▲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역사바로세우기’,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 말처럼 오랫동안 유행하는(?) 용어도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우리의 북쪽에서도 통용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추정하건대 이 말은 남쪽 대한민국만의 고유한 유행어가 아닐까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첫째,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로서지 않고 삐딱하게 서 있으며, 둘째, 아무리 바로 세우려고 해도 잘 안 되고 있으며,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바로세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뜻이다.
첫째, 역사가 바로서지 않고 삐딱하게 서 있다는 것은 역사가 조작, 왜곡된 채로 있다는 뜻이다. 둘째, 아무리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것은 이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아직도 이 나라에 역사적인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역사에 대한 관점이 첨예하게 양분되어 있다. 두 개의 8.15에 대하여, 1950년의 전쟁에 대하여, 두 전직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4.3과 4.19와 5.16과 5.18에 대하여, 주한미군과 북핵에 대하여, 심지어 세월호에 대하여서까지도 극단에 가깝도록 상반되는 관점이 양립한다.
왜 이런 것일까? 국가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화는 최종적으로 제도로써 완성된다. 여기서 제도란 법으로 규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법제화되지 않은 역사는 미완에 그치게 되며 언제라도 뒤집힐 수가 있다.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공동체 구성원에게 세 가지 동기가 있어야 한다. 첫째, 과학적인 이성, 둘째, 현실적인 필요, 셋째 도덕적인 당위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가 되려면 다수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서 영향력의 입지를 넓혀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법률과 헌법으로 규정되어야 권위와 강제력을 가지게 된다.
역사바로세우기는 이런 과정을 모두 거쳐야 하는 지난한 공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유감스럽게 위에 제시된 세 가지 동기 중 맨 첫째 것이 고장 나 있다. 과학적 이성 말이다. 쉽게 말해서 ‘역사적 앎’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바로세우기가 왜 오랫동안 유행만 하면서 해결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보수는 근현대사를 잘 모른다. 반면에 한국의 진보는 근세사를 잘 모른다. 보수는 미국을 잘 모르고 진보는 중국을 잘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보수의 주류사학에서 근세, 즉 조선을 정확히 인식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하지만 진보는 여전히 ‘이씨조선’에 머물고 있다. 보수가 최근 것을 잘 모른다면 진보는 옛날 것을 잘 모른다. 그러니 보수는 우일신(又日新)하지 못하는 것이고 진보는 법고창신(法古創新)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역사가 바로 세워지려면 진보적으로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진보주의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 필요와 도덕적 당위만으로는 이 공정을 수행할 수가 없다. 이전에 진보주의자들은 ‘역사적 앎’의 부실함을 타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삐딱하게 만드는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실력을 쌓아야 한다.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역량을 이끌 여론 주도층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인간의 삶과 역사적 가치에 대해 사상적으로 성숙해져야 한다. 역사바로세우기는 결코 만만하지 않은 공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