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1441년(세종 23) 태어난 단종은 세종의 손자이고 문종의 외아들이다. 생모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다가 운명했다.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죽자 단종은 12세의 약년으로 즉위했다. 문종은 김종서 등의 대신에게 단종을 잘 보위해 달라고 유언했다. 단종에게는 섭정을 해 줄 할머니도 없었다. 단종은 3년 후 세조에게 선위하고 상왕이 되었다가 폐위,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다음해인 1457년에 세상을 떴다.
1453년 세조가 권력을 찬탈한 계유정난은 조선의 정치를 일거에 타락시켰다. 단종 복위 거사를 꾸미다 적발된 성삼문, 박팽년을 비롯한 육신(六臣)은 잔인한 죽음을 맞았고 그들은 반역을 꾀한 역적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른바 역사가 심하게 조작, 전도된 것이다.
노산군을 단종으로 추증하거나 육신을 충신으로 인정하는 것은 세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었다. 세조가 죽고 세조의 아들 예종이 즉위 14개월 만에 또 죽자, 세조의 손자 성종이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성종 다음의 왕이 성종의 아들 연산군이다.
이렇게 되자 세조를 부정하는 것은 조선 왕권의 법통을 부정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그것은 체제의 문제였다. 그러므로 노산군은 언제까지나 노산군으로 있어야 했고 육신은 만고의 역적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역사는 힘을 가진 자들이 만든다.
남효온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세조를 군주로 인정할 수가 없어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1478년 성종이 자연재난으로 두루 직언을 구하자, 25세의 재야인사 남효온은 장문의 소를 올린다. 그가 왕에게 제출한 8개 항의 마지막에는 ‘문종의 비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昭陵)을 복위하라는 주청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불온한 발언이었다. 현덕왕후는 문종의 비(사실은 세자빈, 문종이 죽자 왕비로 추증)로서 단종의 생모이자 세조에게 폐위 당한 왕비다. 그녀의 아버지가 단종 복위 거사에 가담한 ‘역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효온의 상소는 전도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최초의 기도였다. 단종이 죽고 31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효온의 상소는 간신 임사홍과 정창손에 의해 차단되었다. 그러자 남효온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 6인이 단종을 위하여 사절(死節)한 사실을 ＜육신전, 六臣傳＞이라는 제명으로 저술하였다.
남효온의 상소가 있고 나서 39년 후인 1517년, 정순봉, 기준 등의 신하들이 중종을 상대로 가진 아침 경연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육신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정순봉 : 근래 성삼문 ·박팽년이 노산군을 복위시키려 꾀하였으니 그 죄는 주벌해야 하나 그 절의는 주벌할 수 없는데, 이제까지 난신(亂臣)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임금으로서 정대하고 공평한 마음에 어그러집니다.
기준 : 성삼문·박팽년 등이 세조에게는 역적이 되고 노산에게는 충신이 되는데, 그때에는 부득이 죄를 가하였으나 이제는 무슨 혐의가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중종은 성삼문 박팽년의 일은 대신에게 물어야 한다고 답한다. 이것은 공식적으로 육신의 ‘절의’를 논의해도 된다는 왕으로서 행한 최초의 발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