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어려서부터 우리는 ‘조공(朝貢)’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 말만큼 오해가 큰 용어도 없는 것 같다. 조공은 강대국인 중국과 약소국인 주변국 사이의 공식적인 외교 채널이자 교류 수단이었다. 주변국이 먼저 중국에 가서 조공을 하면 중국은 주변국에 책봉을 주는 것으로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국으로부터 받은 책봉이란 동아시아 외교체제로의 편입을 증명하며, 곧 국제적인 승인의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조공은 오늘날에 빗대면, 성격이 다른 점도 있지만, 일종의 유엔 가입과 비슷한 면도 있다.
조공은 주변국이 중국에 ‘사대(事大)’하는 형식을 띤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공의 상호 손익계산을 해볼 때, 대부분의 경우 중국보다는 주변국의 이익이 컸다. 왜냐하면 주변국이 중국에 조공을 하면 중국은 반드시 회사(回謝, 사례)를 하는 것이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조공 - 책봉’이 유엔 가입처럼 한 번으로 끝나는 정치적 외교관계의 수립이었다면, ‘조공 - 회사’는 계속 이어지는 상호교류였다. 그리고 이 상호교류는 경제, 문화적인 품목들이 주를 이루었으니, 조공은 일종의 공무역‘이었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조공 - 책봉’ 또는 ‘조공 - 회사’의 관계는 중국에서 한대(漢代) 이후 중국과 주변국 사이에 제도화되었다. 이것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중국과 주변국이 수립한 상호공존의 교류 방식’이었다.
"조공은 한대 이후 중국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선택한 국제관계의 규범으로 정착되었다. 19세기 이전 만주·몽고·서장(西藏)·안남(安南) 및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일어난 모든 나라는 하나도 빠짐없이 중국에 조공을 하게 되었다. 고대로부터 일본도 조공을 했고, 심지어는 19세기에 이르러 영국·불란서 등 유럽의 나라가 중국에 통상을 요구할 때도 이 형식을 취해야만 하였다."(한민족백과사전)
조선뿐 아니라 다른 주변국들도 조공을 통하여 국가의 생존권을 보존하고, 공식적으로 무역 및 기타 문화 교류를 원했다. 심지어 중국 북방의 흉노는 조공을 안 받아 준다는 이유로 중국 본토를 침공한 일도 있다. 다시 말해서 조공은 중국과의 정치·경제·문화 교류를 위한 형식이며 절차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행위 자체만을 가지고 종주국에 대한 예속, 또는 복속을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조선의 입장에서 명과 평화적 관계를 맺는 것은 나라의 안정과 번영에 중요한 일이었다. 조선은 명에 대해 기본적으로 사대정책을 유지했으나, 명은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는 않았다. 조공은 중국의 입장에서 말하면 “너희들이 잘 하면 우리는 너희에게 조공을 하게 해 준다‘ 정도였다.
조선 초기 명 태조는 조선과 외교적 마찰이 있을 때마다 조선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조공사 파견을 제한하기도 했다. 명은 조선에 사신을 3년에 한 번만 파견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조선은 실리를 얻고자 1년에 세 번 정기사신을 파견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이런 요청은 명의 건무제와 조선의 태종 사이에 외교적 마찰이 해소되면서 수락되었다.
조선은 조공을 통해 중국의 선진 문물을 안정적으로 받아들이며, 경제적으로도 실리를 챙겼다. 명과의 사대 외교는 선진 문물을 수용하기 위한 문화 외교인 동시에 일종의 공무역이었으며 당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왕권의 안정과 국제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자주적인 실리 외교였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조공을 중국에 일방적으로 바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고려는 송나라에 조공을 할 때 미리 회사품 목록을 작성해 갈 정도로 실리를 추구했다. 당시 송나라가 거란 세력에 몰리는 정세를 이용한 것이었다. 송의 소동파는 ‘고려가 들어와 조공하는 것이 터럭만큼도 이익은 없고 손해만 많으니 조공을 축소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을 정도였다.
물론 사대외교가 언제나 조선에 유리하지만은 않았다. 명나라의 흥무제나 영락제, 선덕제 등처럼 엄청난 양의 조공을 요구하거나 처녀들을 요구해 조선을 어렵게 만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구려나 발해도 당에 조공을 했고 최강 무력을 과시하던 티무르 제국도 스스로 조공을 하면서 중국을 사대의 예로 섬기는 등 중국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사대’를 했다는 것이다.
조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일제식민사관이 만든 것이다. 식민사학자들은 조선후기의 부정적 역사를 한국사 전반의 성격으로 규정하면서 한국사 전체 역사가 중국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는 '타율성론'을 퍼뜨렸다. 이것은 왜 조선만 유독 사대주의가 팽배한 나라로 부각되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한국의 대중은 대부분 자기가 조선왕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선에 대한 글을 올리면 주저 없이 자신감에 찬 반박으로 조선을 비하한다. 하지만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잘 아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확신에 찬 지식일수록 맹랑한 것인 경우가 많다.
예전에 내가 또 다른 조선, 즉 이북에 관한 글을 많이 올릴 때에는 “그렇게 좋으면 북에 가서 살아라”라는 댓글이 자주 달렸다. 그런데 요즘 들어 조선역사에 관한 글을 올리니 “그렇게 좋으면 조선에 가서 살아라”는 댓글이 달리지 않는다.(그래서 다소 싱겁기도 하다.)
아무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에게 이북은 가까운 공간이고 조선은 가까운 시간이다. 하지만 이북은 갈 수 없는 공간이고 조선은 갈 수 없는 시간이다. 역사는 내가 갈 수 없는 공간과 시간일지라도 정확히 알기 위해 부단히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