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역사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감 없이 기억해야 한다. 먼저 정확하게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후에 좋은 역사는 계승하고 나쁜 역사는 반면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개인에게는 정직한 태도이고 공동체에는 역사적인 안목이 되며, 현재와 미래를 위하는 진보적인 정신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좋은 역사는 무엇이고 나쁜 역사는 무엇일까? 많은 것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포괄적인 것을 하나씩만 들자면, 좋은 것은 고려·조선 1,000년에 달하는 통합의 역사이고 나쁜 것은 100년을 넘기고 있는 식민지·분단 현실이 아닐까? 현재의 분단 역사는 외면하면서 과거의 것을 더 중시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비역사적인 퇴보일 뿐이다.
나는 두 차례 글을 통해 간도와 조중국경 문제를 정면으로 언급하면서 간도는 우리 땅이 아니라는 것을 논증했다. 년 전 간도 되찾기 국제소송을 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간도를 넘겨버린 청일간도협약이 1909년에 체결되었으니 국제법상 영유권이 인정되는 실효지배 100년이 되기 전에 중국으로부터 간도를 되찾아야 한다는 뜻에서 소승을 제기한 것 같다.
이 때문인지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문제를 다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가 부쩍 많이 방영되기도 했다. 나는 KBS 역사 스페셜 4부작 '백두산정계비의 진실 - 빼앗겨버린 우리의 땅 간도‘와 SBS 역사탐방 ’백두산정계비의 비밀‘을 보았다.
이 두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가 아니었다. KBS의 것은 자의성과 아전인수가 심했고 SBS의 것은 아예 거의 날조 수준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학자들도 더 이상 학자라고 말하기에는 곤란한 수준으로 보였다. (내가 텔레비전은 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나쁘고 연예물보다 다큐멘터리가 더 나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번에 밝혔듯이 1870년대 두 차례의 조청국경회담이 결렬된 것은 조선 대표 이중하가 토문강 국경설을 주장하다가 한 발 물러나 압록강 최북단 지류 홍타수 국경설을 고수했는데, 이것을 청이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09년의 청일간도협약이야 원천무효의 것이니 더 이상 거론할 필요도 없다.
1962년 조선 수상 김일성과 중국 총리 주은래가 서명한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은 1870년대 이래 근 100년 동안 있어온 국경시비를 종결했다는 데에 첫째 의미가 있다.
이 조약은 1962년 10월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양국이 평양에서 체결, 1964년 3월 20일 베이징에서 서로 의정서를 교환함으로써 발효되었다. 여기에서는 백두산 · 압록강 ·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선을 명확히 했다. 이 조약에 앞서 조선과 중국 양국은 6개월 동안 현지를 실측, 조사했다.
이 조약에 따르면 백두산 천지의 경계선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마루의 서남쪽 안부(鞍部, 안장처럼 들어간 부분)로부터 동북쪽 안부까지를 그은 직선'으로 하고, 이에 따라 천지의 54.5%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45.5%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하게 되었다.
또한 이 조약의 의정서에는 양측 국경의 총 451개 섬과 사주 가운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64개의 섬과 사주(총 면적 87.73㎢)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은 187개의 섬과 사주(총 면적 14.93㎢)에 대해 영토권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개별 섬과 사주마다 영토권을 일일이 적시해 놓았다.
이것은 1877년 조선 대표 이중하가 최종 제시한 압록강 최북단 지류 ‘홍타수 국경설’과 같은 것이라는 점에서 중국 측의 양보가 있었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갖는다.
1980년대 초 백두산 천지를 북·중 양측이 분할했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에 알려진 후 한동안 한국전쟁 참전의 대가로 북측이 천지의 절반을 중국 측에 할양했다는 주장이 대북(對北) 불신감을 이용하여 제기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북측이 토문을 국경으로 주장하지 않아 간도의 영유권을 포기했다는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KBS 4부작에서는 마지막 30초 정도 조중변계조약을 언급했는데, 이 조약이 유엔에 접수되지 않아서 무효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1962년이면 조선은 물론 중국도 유엔에 가입하기 전이다.(중국은 1972년, 조선은 1991년 가입) 이에 앞서 우리의 국경문제가 유엔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발상부터가 이상한 것이다.
나는 ‘간도 되찾기 운동’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분단 현실에는 무심하면서 중국의 광야를 우리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아전인수거나 탐욕적 선동에 불과하다. 애국자를 자처하는 선량한 사람들이 여기에 가담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데에 들일 정열과 노고를 현재 진행의 역사인 분단 현실을 타파하는 데에 쓰는 것이 보다 정직하고 보다 역사적이고 보다 진보적인 자세와 태도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