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역사바로세우기는 거듭되는 사화로 인해 장기간 지체하게 된다. 사화라는 것이 신권을 탄압하는 왕권의 발호였거나 사림을 무력화시키려는 훈구파들의 공작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바로세우기를 추동한 사람들은 모두 신하들이거나 사림들이었으니 이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중종의 허락이 있고 나서 152년 후인 1669년(현종 10년) 현종실록 8월 18일자 기사에는 ‘정언 김덕원이 폐군을 입후하고 성삼문 등 6인을 정표하고 사당을 세우는 일을 청하다’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 정언 김덕원(金德遠)이 상소하여, 노산(魯山)·연산(燕山)·광해(光海) 세 폐군(廢君)에 대해서 입후하고, 성삼문(成三問) 등 6신을 정표하고 사당을 세우게 할 것을 청했는데, 소를 들인 지 몇 달이 지났으나 상이 비답을 내리지 않다가, 그를 특명으로 체직시켰다.
사신은 논한다. 노산군은 우리 임금의 적자로서 죄 없이 자리에서 물러났으므로 충신열사들이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입후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는 것이 실로 옳은 것이다....그리고 성삼문 등은 성사시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하였으니, 그 충절이 지극하고 뜻이 비장하다. 중국의 고사에 따라 그들의 관작을 회복시켜 주면 충분한 것이다. 정표하고 사당을 세우게 하는 문제는 본조에서 거론할 수 없는 것인데 김덕원이 함부로 말하였으니, 식자들이 그르다고 하였다. - 이상 현종실록
김덕원이 말한 ‘정표’란 선한 행실을 세상에 드러내어 알린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는 육신의 사당까지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흐르기는 했지만 이는 놀라운 진척이었다. 물론 그 어간에도 몇몇 신하들이 육신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예컨대 인종 원년에 한주(韓澍)는 육신의 표창을 건의했었다.
김덕원이 체직(인사 발령)을 받고 나서 12년 후인 1681년(숙종 7년)에는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복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육신에 그쳤던 논의가 바야흐로 노산군에 대한 논의로 본격화되기 이른 것이다.
숙종은 의외로 역사의식이 명철한 군주였다. 그는 “정실의 왕비 소생은 대군이나 공주라고 부르니 노산군도 대군으로 불러야 한다. 대신들은 의논하라”고 전교하니 대신들이 이에 따랐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육신의 묘에 참배하고 노산대군의 묘에 제사를 올리라고 전교한다.
1691년의 일이었다. 신하들에 의해 주도되던 역사바로세우기의 주체가 왕으로 바뀌는 양상이 된 것이다.
임금이 노량진(露梁津)을 건너 성삼문(成三問) 등 육신(六臣)의 무덤이 길 옆에 있는 것을 보고 그 절의(節義)에 감동하여 특별히 명하여 관원을 보내어 사제(賜祭)하게 하고, 이어서 명하여 근시(近侍)를 노산대군(魯山大君)의 묘(墓)에 보내어 제사하게 하였다.(숙종실록)
다시 7년 후인 1698년, 현감 신규가 정공법으로 노산대군의 왕호추복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숙종은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조정과 재야의 뜻을 물은 후 승정원에 비망기를 내려 단종을 조선의 정통 왕으로 복위시킨 후 거침없이 노산대군의 왕호 추복을 반포했다. 온 나라가 축하하는 분위기에서였다.
이로써 영월 청령포에서 처참히 죽어간 어린 단종은 원래의 자격과 위치를 되찾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6년 후인 1704년 <노산군일기>는 비로소 <<단종실록>>으로 격상된다. 단종 승하 후 249년 만에 완결된 ‘역사바로세우기’였다.
* 이 글은 <조선왕조실록>과 오항녕의 역저 <조선의 힘>을 대폭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