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싸움이 아닌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

기존의 일방적 수업방식에서 벗어나 토론을 통해 결과를 도출해내는 새로운 수업 방식은 기성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대개 학교의 토론이라 하면 어느 정도의 선생님의 간섭과 어느 정도의 규제를 거쳐 뻔한 결과를 도출하는 형식적이면서 불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고 “그 시간에 공부나 할 것이지”라고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영암고에서 동아리 활동 시간으로 운영하는 ‘지혜의 눈’ 동아리 활동은 이러한 기존의 규제나 규범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학생들이 중심이 된 학술토론 활동을 펼쳐가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동아리 지혜의 눈은 매주 수요일 5~6교시 동아리 활동시간에 함께 모여 “야구보다 축구가 더 좋은 운동이다”라는 다소 엉뚱하지만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제에서부터 “명문대가 지방대가 더 좋다” 또는 “개천에서 용이 날수 있는가?”처럼 철학적이면서도 시사적인 문제까지도 토론의 주제로 활용을 하면서 생각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학생들이 토론하는 주제는 책이나 영화, 여행 등에서 발췌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의 눈의 동아리 학생들은 얕은 지식만으로 싸우는 무의미한 시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지식을 채워나가고 있다.
또 다양한 체험 활동을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동아리 회원은 물론이고 참여를 희망하는 학생 40여명을 모집해 전주 최명희 문학과, 김제 아리랑 문학마을을 둘러보는 등의 문학기행도 개최하면서 영암이라는 좁은 우물이 아닌 넓고 다양한 우물 밖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사회에 대한 시각도 넓혀나가고 있다.
물론 학생들이 토론하는 주제에 대한 답은 없다. 각자의 생각이나 사고가 해답이자 정답이다. 다만, 이러한 학생들의 주장이 논리적 오류에 빠지지 않게끔 박휴상 지도교사가 방향을 설정해주면서 수직적 구조가 아닌 수평적 구조의 토론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조절한다.
지난 15일 찾은 영암고등학교 도서관 10명의 학생들이 모여 앉아 열띤 의논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정성화(2학년) 동아리회장의 주재로 22일에 있을 독서 퀴즈대회 운영에 대한 논의였다.
독서 퀴즈대회는 지혜의 눈 동아리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어떤 한 책을 학생들에게 읽게 하고 그 책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 퀴즈 왕을 뽑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행사의 기획부터 문제출제, 행사 진행 까지 모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지도교사의 도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할은 학생들이 출제한 문제에 오류가 없는지 정도만 검토하는 수준이다. 자리배열부터 패자부활전, 사진촬영, 사회, 조기에 모두 탈락했을 때에 대한 대처방안 등 여러 가지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며 사뭇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됐다.
회의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박 지도교사는 “퀴즈대회의 관심도와 흥미도를 높이기 위해 초당대학교 여학생들에게 문제출제를 부탁하는 것은 어떨까?”라며 의견을 제시했다. 사춘기에 있는 10대에 그것도 남학생들이라면 당연히 ‘환호’나 ‘탄성’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 예상됐지만 반응은 의외였다. 정시진 부회장은 “단지 몇 문제 출제를 해주는 것이라면 큰 실효성은 없고 초청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자 다른 학생들도 부회장의 의견에 동조했다.
단순히 철없는 10대들의 말장난의 자리가 아닌 학생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결과를 도출해내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회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갑작스런 주제로 다시한번 짧지만 강한 토론장이 펼쳐졌다. 바로, 이날 동아리 활동시간을 활용해 진행된 ‘자살방지교육’이 토론주제였다. 학생들은 “교육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요? 외부교육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교장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라며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 한 학생은 “교육을 하더라도 굳이 동아리 활동 시간을 빼면서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고 말했다. 예전의 교육의 잣대로 보면 학교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반항이자 도전이라고 비춰질 수 있을 상황으로 삭막한 분위기가 조성될 법한 했지만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하고 자연스러웠다.
박휴상 지도교사는 “자살예방교육을 비롯해 외부교육은 교장선생님의 독단적인 계획이기 보다는 현 교육제도의 의무사항입니다”며 “여러분들이 대통령을 비롯해 그 누구라도 비판은 할 수 있지만 누구를 헐뜯기 위한 비판이 아닌 정확하고 합당한 근거가 뒷받침 되어야 합리적인 비판이라는 점을 여러분들이 알아줬으면 합니다”고 말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혜의 눈’동아리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불만과 그들만의 목소리를 올바르고 합리적인 토론문화를 통해 표출시킴으로서 ‘꿀 먹은 벙어리’가 없고 학생 중심이 되는 틀에 얽매이지 않은 요즘의 교실문화의 모델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