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5시. 기아 타이거즈와 SK와이번스의 주말 3연전 중 2차전이 열리던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에는 앳된 모습의 한 남학생이 한 남자의 팔짱을 끼고 마운드에 올랐다. 이날 시구자로 초청된 은광학교 최명재(18)군이었다.
최 군은 도내에서 유일한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는 시각장애인이자 지적 장애인으로 학교에서는 이미 야구박사로 유명하다. 지난해부터 갑자기 야구, 특히 KIA타이거즈에 빠지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야구를 본다. 시각장애로 인해 일반인처럼 뚜렷하게 보기는 힘들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영상과 해설 등을 빠짐없이 자신의 머릿 속에 담고 야구장면 하나하나를 정리해 나가면서 자신이 응원하는 KIA타이거즈의 승리를 응원한다.
야구를 좋아한 계기에 대해 최 군은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지난해 기아가 좋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좋은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많이 이기더라구요. 그래서 기아와 야구를 좋아하게 됐어요”

그 중에서도 최 군의 우상은 양현종 선수다. 그 이유 역시 “잘 하잖아요”였다. 너무도 짧은 대답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이것보다 더 정확한 답은 없을 듯 했다. 그리고 최 군은 “지난해 기아는 윤석민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선발로 쓸 수 없는 상태였고 용병 투수들도 잘 못해 양현종 선수를 제외하고는 선발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양현종 선수는 역할을 잘했고 승리도 많이 했잖아요.” 나름의 분석을 했다.
이러한 최 군의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이미 학교에서는 정평이 나있다. KIA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친구들에게 야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야구에 관심이 없던 친구들조차 야구 신봉자로 만들어버린다.
또 학교 내에서는 야구 해설계의 레전드 허구연 위원이나 이순철 해설위원 못지않은 입담을 선보이면서 매니저를 자청하는 친구마저 생겼을 정도이다. 최 군의 꿈은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우상인 양현종 선수와 같은 투수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이에 담임인 정명민 교사는 최 군의 꿈인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최 군이 좋아하는 야구장에서 공을 한번이라도 던질 수 있게 하는 것이라도 해주고 싶어 어렵사리 마련한 이벤트가 바로 초청시구였다.
이번 이벤트가 성사되기까지 1년여라는 시간이 걸렸다. 정 교사는 수시로 KIA구단에 연락해 최 군이 시구자로 가능한지를 문의했고 10여차례 가까이 속된 말(?)로 뺀찌를 먹었다. 이미 지역행사를 홍보하고픈 지자체 장들과 유명연예인들의 일정들로 가득 차 있는 시구자 명단에 개인이자 시각장애인이 끼어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계속되는 정명민 교사의 구애에 감탄을 했는지 마침내 KIA구단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렇게 18세의 시각장애인이 꾸었던 꿈은 현실이 됐다.
정명민 담임교사는 “명재의 꿈이 야구선수인데 선생님 입장에서 그 꿈을 짓밟을 순 없잖아요. 제가 야구선수가 되게는 해줄 순 없지만 시구라도 할 수 있게 도와주면 명재가 꿈을 잃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고 시구의 배경을 설명했다.
가만히 담임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던 최 군은 “꿈을 이뤘다고 꿈이 끝난 것은 아니잖아요. 저는 야구선수가 되는 게 꿈입니다. 다시 시작할 거에요”라며 자신의 꿈이 현재진행형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며 자신의 꿈이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선생님의 관심의 고마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