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폭우 피해로 난리다. 40명 사망, 9명 실종, 34명 부상의 재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긴급히 입국해야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상황을 크게 바꿀수 없지 않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외신들도 신문 첫면에 오송지하차도 침수 상황을 다루고 있는데도 말이다. 거기에 영부인이라는 사람은 명품 쇼핑을 하고 있었다니 어느 나라 대통령 부부인지 의심스럽다.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기대를 저버린지 오래지만, 학습을 했으니 조심하겠지라는 기대마저 짓밟으니 해도해도 너무하는 것이 아닌가.

대통령이 재난 상황에도 크게 할 일이 없다니, 그 국민들은 모멸감을 지나 챙피함을 감당해내야 한다.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생각만해도 따뜻하고 유쾌한 사람. 노회찬.

5년전 7월 23일, 전국민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고 안타까운 눈물을 흘렸다.

그 당시 도당위원장이었던 필자는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노회찬 의원이 살았을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은 많고 다양했다.

조화를 배달하는 노동자들은 조화만 놓고 가는 것이 아니라 묵념과 분향을 잊지 않고 하셨다.

진도, 완도, 해남, 순천 등 전남 각지에서 노회찬의원이 말했던 투명인간들이 찾아와 분향을 했다. 그럴때마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그칠수가 없었다.

국회앞에서 치러진 장례식에선 노회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자 국회 환경미화원 여성노동자들이 운구차가 지나는 길을 지켜주고 있었다.

노회찬의 시선과 발길이 어디에 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또한 노회찬을 기억하면 장미꽃이 떠오른다. 세계 여성의 날이면 당내 여성 지방의원들과 당직자들, 그리고 국회 의원회관내 알고 지내는 여직원들과 환경미화원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며 여성의 날을 기념하곤 했다.

최근 들어 많은 정치인들이 여성의 날에 장미꽃을 선사하는 것의 시작이 노회찬 이었다.

6411번 버스에서 만난 새벽을 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잊지 않고 호명했고 투명인간들을 정치와 사회 전반에 등장시켜 낸 가슴 따뜻했던 사람이었다.

따뜻한 마음과 시선은 촌철살인의 어록속에도 묻어 있다.

상대방과 토론할 때도 거친 언어로 신랄하게 비판하기 보다는 “50년동안 같은 불판을 사용하면 고기가 다 타버린다. 불판을 갈아야 한다” “ 법앞에 만인이 평등한게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한 것 아닌가” “외계인이 침공하면 다같이 힘을 합쳐 싸워야하지 않겠는가” 등, 인신 공격이나 비난이 아닌 누가 들어도 공감가는 언어로 상대방을 제압했다.

국회의원 세비중 180만원을 빼고 나머지는 당에 헌납해 활동비로 사용하도록 했던 가난한 정치인 노회찬. 없는 살림에도 후배들이 국회에 찾아오면 돌아갈 때 차비에 보태라며 5만원씩 쥐어주곤 했다고 한다. 원내대표가 되고 특수활동비가 지급되자 “국회는 기밀을 요하는 수사를 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받은 특수활동비를 반납하고 폐지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의원직을 상실해가면서도 떡값받은 검사들 명단 공개에 주저하지 않으며 거대한 골리앗 삼성자본과 맞장떴던 정치인. 무엇을 할지 고민스러울 땐 가장 어려운 일을 선택했던 노회찬. 그가 많은 것을 바꾸기 위한 불씨들을 남기고 떠난지 5년이나 지났지만 정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암울하다.

대통령에게 위로를 받기는커녕 무시 당하는 느낌을 받고 막말과 혐오 언어들이 난무하는 정치권은 정치 불감증을 유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치는 말로 한다고 한다.

노회찬의 토론을 보며 우리 국민들은 그의 말 한마디에 위안을 받기도 하고 통쾌해하기도 했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기후위기, 재해, 불평등, 차별 등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등이 휠 것 같은 삶을 견뎌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런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까. 호빵맨을 떠올리며 입가의 미소를 짓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