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8월 마지막 날, 맑고 높고 파란 가을빛이 폭염의 위압을 비집고 나와 한 자리를 겨우 꿰어차던 그날 한낮이었습니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야윈 몸에 털까지 뭉텅이로 빠져 벌건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앙상한 몰골이었습니다. 못난이의 마지막 날들은 더없이 공허하고 쓸쓸했습니다. 길고양이의 도발과 사나운 산까치떼의 소란에도 미동조차 않던 녀석이 날카로운 신음을 사나흘밤 토해냈습니다. 그 좋아하던 소시지 간식에 혀끝도 대지 않고, 바쁜 농사일 핑계로 도둑처럼 나타나 겨우 밥이나 챙겨주던 주인의 발놀림을 초점 잃은 눈빛으로만 쫓던 끝이었습니다. 평상 그늘 아래 몸을 누인 채 가뿐 숨을 토해냈을 녀석은 정작 숨이 끊긴 뒤 더없이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못난이는 꼬박 14년을 함께 살아온 우리집 개입니다. 평화로운 고향 뒤안에 집을 짓느라 정신없던 날, 먼저 와 있던 강아지가 그만 차바퀴에 깔려 절명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강아지 사랑이 유별났던 딸아이는 오열 끝에 몸져누워 물 한모금마저 거부할 만큼 고통 속에서 몇 날을 보냈습니다. 혹여 하는 마음으로 같은 배에서 나온 강아지 한 마리를 사정해서 얻어와 품에 안겼더니 ‘왜 이리 못생겼냐’며 밀어내다가 그래도 키우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못난이였습니다. 그 후로 몇 마리 강아지 식구가 더 있었는데 호락호락하지 않은 산골살이에 명이 길지 못했습니다. 독사에 물리고 장염에 쓰러지고, 다들 속절없이 떠나버린 와중에도 사연 많은 시골살이를 꿋꿋이 동행해준 기특한 녀석이 못난이였습니다. 진드기에 몸이 헐리고 천둥번개에 발작하던 여름은 물론이고, 한겨울 눈보라와 봄가을 농사에 지친 주인의 무신경에도 짜증이라곤 없었습니다. 뒷산을 함께 오르는 날이면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눈동자는 그믐밤 별빛처럼 빛났습니다. 열 살이 넘어서면서부터는 마치 달관한 수도승 같았습니다. 목줄을 풀어줄라치면 주인 목소리를 알아들을 거리만큼만 걸음을 뗐고 해가 서산에 기울면 현관 앞에 공손히 앉아 주인과 마주할 눈빛을 단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못난이는 내 삶의 위로였고 고단한 일상의 안식이었으며 속 시끄러운 세상 속 평화였습니다. 저나 나나 애면글면 세상살이 동반자였던 것입니다.

못난이의 목줄을 풀고 감나무 밑에 고이 묻었습니다. 미안하고 후회스런 일이 휘몰아쳐 환한 달빛 아래서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딸아이한테는 소식조차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논밭으로 일 나가는 새벽 어스름과 땀범벅인 채로 집마당에 들어서는 석양녘이면 못난이 살던 집주변을 서성거립니다. 못난 주인 만나서 애 많이 쓴 녀석한테 이 글로 마지막 작별을 해야겠습니다.

고향에 돌아올 적에 제법 큰 포부를 품었습니다. 고향과 부모를 모시고 학교와 마을을 되살리는 데 힘을 보태고 싶은 그런 꿈 말이지요. 그런데 14년을 살면서 가장 흔하게 마주하고 가장 부산한 시간을 보낸 것은, 누구네 아버지와 아무개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일이었습니다. 천수를 누렸든, 원통스럽게 절명했던 마지막 작별은 황망했습니다. 남은 가족과 벗들의 목소리는 허탈하고 애달팠습니다. 한참 시간이 흘러 평온한 일상이 회복될 즈음이면 오랜 벗을 맞듯이 가신 이를 잔잔히 추억할 수 있을지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스러지고 사라져간 사람들의 생애가 기억마저도 희미해지기 전에 서둘러야 할 일이 많습니다. 기록으로 남긴다면 가장 큰 존중일 것입니다. 그런 기록들을 모아 기억의 공간을 만든다면 그보다 값진 헌정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영암군 평생 군민증’을 추서하면 유족들에게도 큰 위안이자 자긍심이 될 것입니다.

일생을 풍찬노숙하며 죽음을 그림자처럼 달고 싸웠던 독립운동가를 난도질하는 야만의 시대입니다. 자식과 이웃을 위해 갖은 고난과 수모를 달게 견뎌온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경중으로 가릴 수 있겠습니까? 제 자신의 영욕을 뒤로 하고 몸 부서지는 헌신에 주저하지 않았던 우리네 부모의 일생은 독립군의 삶 못지 않습니다. 마땅히 찬양하고 고무해야 합니다. 이 야멸찬 배신의 시대를 살아내는 우리만의 방식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