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1978년 동아일보에 소설 <연개소문>을 연재하던 유현종 작가는 어느 날 박정희의 호출을 받아 청와대에 간 적이 있다고 한다. 박정희가 유 작가에게 묻기를. “독재자도 업적이 있으면 훗날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가?”라고 했다. 작가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박정희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독재자는 다음 해에 죽었다.
역사에는 수많은 독재자가 있다. 연개소문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조선조 태종 이방원과 세조 이유, 연산군 이융 등도 독재자의 반열에 든다. 대한민국의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도 독재자들이다.
나는 독재자에는 두 부류가 있다고 본다. 그들이 행한 독재가 공적인 가치로 전환됐는가 아니면 사적인 욕망에 머물렀는가에 따라 다르다. 나는 연개소문이나 태종 이방원은 뛰어난 공적 독재자지만 위에 언급된 나머지 사람은 모두 사적인 독재자였다고 판단한다.
1917년생 박정희는 1417년생 이유(세조)보다 정확히 500년 후대의 사람이다. 박정희는 44세에 권력을 잡아 62세에 죽었고 이유는 38세에 권력을 잡아 51세에 죽었다. 박정희는 19년, 이유는 14년 동안 재임했다. 두 시대의 평균수명을 감안할 때 비슷한 연령 역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박정희는 왜 작가를 청와대에 부르기까지 해서 그 뻔한 질문을 한 것일까? 일단 박정희는 자기가 독재자임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가 연개소문 같은 독재자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나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그는 친일 군인 출신이라는 자기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을 연개소문이라도 되는 양 스스로 착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이것은 독재자 박정희의 심리불안을 알게 해준다. 유현종 작가가 그랬듯이, 그런 정황에서 독재자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아니오. 독재자는 독재자일 뿐’이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다른 독재자라면 몰라도 당신은 아니다’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정희가 그따위 치졸한 질문을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는 ‘위안’ 같은 것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위안도 정상적인 위안이 아니라 ‘셀프 위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심성이 나약해진 사람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유와 박정희는 무려 500년의 시대 격차가 있지만 비슷한 점이 참 많다. 둘 다 어려서부터 권력의지가 남달랐다는 사실, 비열한 방식으로 권력을 찬탈했다는 사실, 반대자를 무자비하게 제거했다는 사실, 동조자에게는 철저히 보상했다는 사실,
치적을 쌓으려고 끝없이 집착했다는 사실, 언제나 자기 행위를 공적인 것으로 미화했다는 사실, 죽을 때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 자기 후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 이 모두가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사실들이다.
세조의 후계자 예종은 16개월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성종 시대를 거쳐 아주 특이한 폭군 연산군의 시대를 맞이하게 됨으로써 조선이라는 국체는 위기에 봉착했다. 연산군은 조선의 왕 중에서 이례적으로 전제적인 왕권을 가지려고 기를 쓴 군주였다.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이런 구조는 필연적으로 소수의 측근을 형성하게 된다. 연산 시대에 유독 간신배가 많이 나온 것은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나는 역사적 맥락으로 보아 세조의 진정한 후계자는 연산군이었다고 본다.
박정희는 일본의 천황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 했던 폭군이다. 그는 후대를 생각하지 않았다. 또 다른 폭군 전두환은 박정희가 낳은 사생아 권력이다. 그리고 다음 대를 거쳐 박근혜라는 특이한 권력이 출현했다. 그 역시 소수의 측근에 의지하는 정치를 펼치다가 실패하고 있다. 나는 역사적 맥락으로 보아 박정희의 진정한 후계자는 박근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