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자 김구

유학(儒學)에서 시대의 좌표를 찾고자 나선 중국 답사 종착지 가흥(자싱), 그곳에서 나는 성리학자도 양명학자도 아닌 인간 김구를 만났다. 어쩌면 그를 만나기 위해 이 먼 길을 왔는지도 모르겠다. 1919년 상하이 맹약(盟約) 후 일제의 모진 탄압과 이탈(離脫) 속에서도 각고(刻苦)하며 끝까지 임시정부를 지켜낸 그에게서 진정한 선비정신을 본다. 고담준론(高談峻論)에만 빠져있었던 선대(先代) 성리학의 부정적인 모습을 극복하고, 동학, 불교, 기독교 등 타 종교와도 소통하며 대의(大義)를 추구했던 그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유학의 모습에 대해 새삼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백범일지 속 자신의 스승 고능선(高能善)과의 논쟁에서, 일제 총칼 앞에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던 공맹(孔孟) 사상을 비판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은 정작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이는 그가 자신의 두 아들을 각각 인(仁), 신(信)이라 명명한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의 둘째 아들 김신은 이곳 현지 안내 책자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아버님은 청년 시대에 바로 중국의 유학을 앙모(仰慕)하고 중국 고대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으셨다. 나의 마음 속에 그는 매우 충성(忠誠)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충성과 효도를 다 두루 갖출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보기에 아버님은 충성하고 효도하는 분이다. 그는 나라의 독립이 없으면 가족의 평안도 없는 이치를 아시고 있다.”

마침내 일제가 항복하자 그는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려왔던 조국에 개인 자격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조국이 둘로 갈라서는 모습에 또다시 좌절했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 없어 미군정과 남북으로 동분서주했다. 모진 고난 속에서도 항일 망명정부를 지켜 낸 명분(名分), 바로 조선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우선 반쪽이라도 차지하고 보자는 눈먼 권력자들의 눈에 그는 한낱 이상주의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1949년 안두희의 총탄에 운명하기까지 그의 70평생은 그 자신과 가족들에게는 참으로 고단한 삶이었다. 죽기 3년 전 그가 다시 찾은 공주 마곡사 대웅전 기둥에 걸려 있는 글귀만이 그의 삶을 위무(慰撫)하듯 처연(凄然)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却來觀世間(물러나 속세의 일을 돌아보니)

猶如夢中事(마치 꿈속의 일만 같구나!)’

자신과 이해집단의 권력이나 이익 추구에 도움이 된다면 대의도 명분도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작금의 세태(世態), 그리고 그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지망)인들과 우리 모두는 항일독립 거목(巨木)의 밑거름이 된 인간 김구의 선비정신을 새삼 곱씹어보아야 할 것이다.

연재를 마치며

4박5일 중국 답사를 마치고 귀국하는 발걸음은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충만감으로 뿌듯했다. 그것은 중국이 유학을 매개(媒介)로 우리와 오래전부터 교류해온 이웃이었다는 신선한 자각(自覺)이었다. 지난 1992년 한중수교 이래 30여 년 세월의 뒤안길에서 분명히 군사적, 외교적 갈등으로 인해 관계가 소원(疏遠)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다시 신뢰를 회복하여 함께 가야 할 사이인 것은 확실하다. 이제 한중(韓中)이 동반자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밀린 숙제를 하듯 이번 답사를 통하여 느꼈던 대표적인 두 가지 측면만 언급하고자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온고지신은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말로,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에서 따온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인데, 요즘 같은 AI와 유튜브로 대변되는 신기술 시대에 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제시해주고 있다. 유의할 점은 ‘溫故’와 ‘知新’ 중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양쪽 모두를 중시하되 반드시 ‘溫故’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溫故’에만 머무른다면 그러한 유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보할 것이고 반대로 ‘知新’만 추구해도 그 정통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굳이 이 두 개념을 구분하자면, ‘溫故’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성리학이라면, ‘知新’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양명학 쪽에 가깝다 할 것인데, 중국에 비해 우리에게는 바로 이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역동성이 요구된다 하겠다. 그리하여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유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바르게 실천하여 인간답고 살기 좋은 사회 건설에 이바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북공정(東北工程)

20202년부터 국책 연구사업으로 추진되어온 ‘동북공정’은 현재 중국 영토 내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덧붙이자면 자국 내 동북지역, 다시 말해 만주 지방의 모든 역사를 바로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여 기정사실화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번 답사 과정에서 이와 같은 동북공정이 깊숙이 진행되었음을 체감하며 무거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물론 ‘하나의 중국’을 추진하고 있는 자국 내 정치적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지난 청왕조(淸王朝) 말기 일제를 비롯한 서구 열강에게 당한 뼈아픈 역사를 만회하고 자국 내 소수 민족들의 독립 의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고조선과 발해, 고구려의 고토(古土)는 차치(且置)하고 그 모든 우리의 지명과 인명까지도 자신들의 것으로 바꿔치기했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이번 답사 중 재미있게 보았던 ‘송성가무쇼’만 하더라도 우리의 전통 아리랑 공연을 마치 자신들 문화로 해석되게끔 처리하거나, 당시 금나라에 맞서 남송(南宋)을 지켜낸 자신들의 국가 영웅 악비(岳飛) 장군마저, 금나라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다 보니 불가불 내전으로 처리하여, 당시의 적장 김올출 장군과 대등하게 처리한 것 등에서 그 사례를 엿볼 수 있었다. 이에 우리는 김구 선생의 독립정신을 본받아 대(代)를 이어가면서라도 역사적 사실을 전수하여 우리 민족의 고대사를 기필코 사수(死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