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장  우 용 희

지난달 18일 5·18광주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에 이어 6·10민주항쟁의 28주년 기념행사마저 고집스런 정부는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을 외면한 채 단독으로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6·10 민주항쟁은 1987년 군부독재 정권의 ‘4·13호헌조치’에 맞서 전 국민적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광범위한 민주화 조치를 이끌어낸, 한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마련한 민주화 운동이다.
쉽게 말하자면, 6·10민주항쟁은 대한민국 국민이 5년에 한 번씩 대통령을 직접 투표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들었고, 필자처럼 신문에, 또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인터넷 등에 자유롭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가져왔으며, 막걸리를 마시며 대통령 욕을 실컷 해도 안기부에 끌려가지 않는 세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의 실현을 기념하기위해 노무현 정부에서 200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었다.

'노가리'를 향한 욕설과 저주
2004년 8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 24명으로 구성된 ‘극단 여의도’가 곡성군에서 주민들을 모시고 창단 공연을 한 바 있다. ‘환생경제’라는 제목의 이 공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해 각종 비하와 성적 욕설을 퍼부어 논란이 됐다. 서슬퍼런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무대 맨 앞줄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앉아 연극을 즐기며 박장대소하며 관람했었다.
이 연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가리’라는 이름으로 술만 퍼마시는 인물로 묘사했으며, ‘부녀회장’ 역할의 한 의원은 노가리를 향해 “인사를 해도 욕을 하는 이런 X잡놈이 다 있어”라거나 “야! 사내로 태어났으면 X알값을 해야지”, “죽일놈 같으니라구”라는 식의 막말을 퍼부었다.
노가리로 출연했던 주호영 의원도 “이쯤하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갈을 흉내냈다.
연극은 ‘저승사자’로 출연한 당시 주성영 의원이 “당신 남편(노가리) 내가 보니 개판 오분 전인데 데려가면 속 시원하고 좋잖아. 죽은 경제는 살려주는 대신 당신 남편 데려가되 3년간 형의 집행을 연기해줄게”라고 하면서 끝이 난다. 대통령 임기 끝나는 순간 저승으로 데려가겠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고 한다.
 

조롱당하는 ‘아몰랑 대통X’
최근 ‘아몰랑 대통X’이라는 신조어가 언론과 인터넷 상에서 화젯거리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최근의 메르스 확산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조롱하는 말로 ‘나는 잘 모르겠고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대학원에서 기생충학을 전공한 다소 생소한 이력을 가진 서민이라는 단국대 의대 교수가 최근 블로그에 올린 ‘대통령의 단점’이란 제목의 글이 매우 흥미롭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수많은 장점이 있다. 첫째, 자기관리가 뛰어나다.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올림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10여개의 실핀을 이용해 본인이 직접 스타일링을 한단다. 둘째, 자신이 사과해야 할 일을 아랫사람에게 미루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셋째, 보기 드문 효녀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하기만 하면 불같이 화를 내신다. 넷째, 사람을 뽑을 때 능력보다는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더 높이 사서, 공직기강을 잡는 데 누구도 따라갈 사람이 없다. 다섯째, 가끔씩 유체를 이탈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대통령만 아니면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두세 번은 나가셨을 것 같다. 여섯째, 노트 필기의 달인이다. 이건 수능을 볼 초·중·고생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일곱째, 뚜렷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어 북한으로부터 우리나라를 막는 데 적격이다. <중략>
이런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한 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위기관리 능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발생한 세월호 사고 때, 대통령은 배가 침몰했단 소식을 듣자마자 7시간 동안 잠적했다가 오후 5시쯤 갑자기 나타나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그 시각엔 배가 거의 가라앉은 뒤였기에 이 발언은 매우 뜬금없게 들렸는데,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대통령의 행적도 그때와 비슷했다. 메르스 감염자가 나온 뒤 “메르스와 관련해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처벌하겠다”는 지시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던 박 대통령은 정확히 14일 만인 6월3일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연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태스크포스팀을 만들겠다” “더 이상 확산이 안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는데, 그때는 이미 2명의 사망자와 3차 감염자까지 발생한 뒤였고, 많은 국민들이 마스크를 쓰거나 외출을 삼가고 있는 중이었다. 세월호 사고 때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희생된 것처럼, 2015년 대한민국은 메르스 환자 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메르스 강국이 됐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세간의 농담처럼 메르스(MERS) 대신 코르스(KORS)로 이름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혹시 정부가 이런 식의 국위선양을 원했던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3년 전 대선에서 우리 국민들은 위기관리보다 자기관리를 더 중시하는 대통령을 뽑았다. 자기관리가 뛰어난 대통령을 보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이것 한 가지는 명심하자. 현 정부는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 작년엔 세월호 사고가 났고, 올해는 메르스가 왔다. 남은 임기 동안 몇 번의 위기가 더 올지 모르지만, 다행히 정권의 수명은 유한하다.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지킨다는 각오로 2년 반을 버티자.
살아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으니 말이다.』<-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에서 발췌>
 

광복절 70주년 행사마저 반쪽이 될 듯
앞서 소개한 ‘환생경제’라는 연극을 연출한 이대영 중앙대 교수가 올해 ‘70주년’을 맞이하는 ‘광복절’의 기념행사 감독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위안부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매춘부’라고 주장했던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두둔하고 ‘백범은 대한민국 공로자 아니다’라고 말한 이인호 KBS 이사장,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민족주의 혁명가’로 포장한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등과 함께 2013년 친일·독재미화 파문을 일으킨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에 관여한 ‘한국현대사학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던 이대영 중앙대 교수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이다.

▲ 1987년 6월 9일, 화순 출신의 연세대학교   이한열 씨가 민주화 시위 도중, 전투경찰의 불법  진압으로 사망하며6·10민주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반쪽 행사로 진행된 6·10민주항쟁 정부 기념식에서 “성숙한 민주주의 실현과 국민대통합”을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70주년 행사마저 반쪽을 자청한 것으로 보인다.
친일잔재와 독재잔재, 유신잔재가 청산되고 87년 6월 항쟁 정신으로 민주주의 사회를 올곧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국민대통합’을 앞당기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공동체 사회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