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은 음력 5월 5일 수릿날(단오)이다. 이날은 일 년 중 가장 양기(陽氣)가 왕성한 날이기 때문에 큰 명절로 여겨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단오제를 열어 즐겁게 마시고 노는 행사를 연다. 영암에 단오제는 없지만, 매년 덕진면에서 덕진 다리를 만든 덕진 여사의 추모제가 열린다.
추모제는 마을 주민들이 덕진 여사의 공덕을 기리며 해마다 군수와 영암지역 기관사회단체장이 참석하고 대석교창주 덕진공덕보존회가 주최가 되어 진행하는데, 이 중요한 행사의 주인공 덕진 여사는 실존했던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유속이 빠른 강을 건너면서 불편을 겪는 마을 주민들과 나그네들을 위해 자신이 일해서 모은 돈으로 다리를 만들었다는 교훈적 이야기는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실릴 만큼 의미 있으며, 천 년 전부터 전해온 설화 속 인물을 주민들이 오랫동안 기억하고 기념비와 영정을 모신다는 것은 하나의 지역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현재 덕진 여사 이야기에 나오는 실재하는 것 중, 덕진 다리는 1996년에 복원시켜 다리의 모습을 갖췄지만,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고 강물로 떠내려 온 부유물이 다리 난간 사이에 걸리는 일이 자주 발생해 다리를 없애고 징검다리의 모습만 남아 있다. 그리고 덕진 여사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덕진리 교번 마을에는 덕진 여사의 집터였던 자리에 만든 덕진 여사 영정을 모시는 덕송재(德送齋)와 1813년 마을 주민들이 세웠다는 ‘대석교 창주 덕진지비(大石橋創主德津之碑)’ 가 있는데, 물론 이것만 가지고 관광 자원화를 진행할 수는 없다.
한 지역에서 관광 자원화를 진행하려면 한 가지 소재만 가지고 진행하는 것보다 그 소재와 연계해 다른 분야를 발굴해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갖는 ‘체류형 관광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암에도 다양한 체류형 관광지가 있다. 월출산을 모티브로 ‘기(氣)의 고장’이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한 기찬랜드, 낭산 김준연 생가, 왕인박사 유적지, 도갑사, 구림한옥마을, 기찬묏길, 100리 벚꽃길 등이 여기에 속한데, 이러한 관광지는 아직 관광객의 흥미 유발과 체험 위주의 관광보다 먹거리에 더 치중하는 맹점을 보인다.
그러므로 이를 보완하고 국내외 관광객에게 ‘다시 찾고 싶은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면 영암의 전설과 설화가 바탕이 된 ‘스토리텔링 관광 자원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스토리텔링’이란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인데, 어린 시절 할머니나 부모님에게 잠자기 전 들었던 동화처럼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에 녹아 있는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 유발과 설득이라는 가장 큰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형태가 지역의 전설과 맞물려 관광자원을 늘릴 수 있는 성공적인 방법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구체적인 사례들이 있다.
충북 단양군에서는 ‘퇴계 이황과 관기 두향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오는데,
퇴계 이황이 두 아내와 사별하고 둘째 아들마저 잃었을 때 단양군수로 오게 되어 16세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사별해 기생이 된 두향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학문이 깊고 매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연결되어 더욱 각별해졌는데,
퇴계의 넷째 형이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해 퇴계가 전근을 가게 되면서 둘은 이별하게 된다.
두향은 퇴계가 떠날 때, 자신의 마음을 담아 매화 화분을 하나 선물했는데 퇴계는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안동을 내려갔을 때도 늘 매화나무와 함께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그가 있던 도산 서원의 매화나무는 그때 두향에게 받은 나무의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후에 퇴계가 임종했을 때 두향은 구담봉 앞 강선대에 올라 거문고로 초혼가를 탄 후 자결했다고 한다.

이 전설을 모티브로 가야금 조형물, ‘연인 두향’ 공연물을 만들고, 제33회 소백산철쭉제에서도 ‘사랑’이라는 테마를 담아 축제를 활성화했다. 단양에서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필두로 여러 가지 스토리텔링 관광 자원화를 강화했는데 올 초에 2015년 한국의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에서 대상을 받고, 문화관광체육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한국인이 좋아하고 꼭 가봐야 할 국내 대표관광지 100선에 선정되었다.
스토리텔링 관광자원은 세계의 유명한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탈리아 베로나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줄리엣의 집과 동상, 가공 무덤을 조성해 유명 관광지로 부상했다. 그리고 이밖에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동상과 안데르센 자취 체험’, 일본 도쿄의 ‘아사쿠사 센소지’,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 미국 뉴욕의 ‘One World Trade Center' 등은 스토리텔링 관광자원 유형에 따라 체계적으로 지역 전체를 관광 자원화 하는 데 성공한 사례들이다.

위의 사례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구전되는 전설 속에 나오는 인물, 배경, 건물, 자연물, 사물 등을 관광지의 상징으로 활용해 상상 속의 이야기를 눈앞에 실사화하고 관광객이 직접 그 주인공이 되어보는 체험의 장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덕진 여사의 이야기에서도 여기에 충족시킬만한 조건들은 있다. 덕진 다리, 강나루가 있어 모래사장이 있었다던 영암천, 마을 축제에 버금가는 규모의 우시장, 덕진의 주막과 저렴하고 맛난 영암 음식들, 원님과 쌀 삼백 석(혹은 덕진이 묻어두었다는 삼백 냥이 들어있는 항아리), ‘남을 위해 베풀 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프로그램, ‘예(禮)와 덕(德)의 고장 덕진’이라는 슬로건 등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예와 덕은 유교를 중시하는 동양에서 바람직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중요 기본 덕목들이다. 또한,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지닐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도덕이 무의미해지는 세대들에게 반드시 심어줘야 할 중요한 의식으로 의미를 지닌다. 덕진의 이야기는 전국 초등학생들이 교과서를 통해 접하면서 ‘덕진’이라는 인물과 덕진 다리의 실재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됨에 따라 영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는데, 모 사이트에 덕진 다리에 대해 질문하는 어린이들에게 ‘전라북도 영암에 있다’고 답해주는 웃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초등학생들의 이런 기본적인 지식을 바로잡고 아직 발굴되지 못한 영암의 많은 매력적인 관광자원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덕진 여사와 덕진 다리’ 이야기는 스토리텔링 관광자원화로 진행해볼 만하다.

대석교창주 덕진공덕보전회 총무 조활현 씨는 “어릴 적 지금의 덕진교 부근 둑길 주변이 모두 모래사장이었다. 당시에 이곳의 모래는 질이 좋기로 유명했었다. 그리고 여름이면 사람들이 모래찜질하며 즐겁게 노닐고 덕진 다리를 오가곤 했다”며 “덕진 여사의 이야기와 연계해 근처의 농업기술센터 장미공원과 함께 테마공원으로 만들면 지역민뿐만 아니라 외지의 관광객도 늘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가끔 대학생들이 논문을 준비하며 덕진 다리에 관해 묻고 지나가기도 하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지역과 주민들이 관광자원으로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초등학교 4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덕진 여사 이야기’
‘저승에 있는 곳간’

옛날 전라남도 영암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평소 인색하기로 유명했던 영암 원님은 수명이 다해 염라대왕 앞에 끌려갔다.
“염라대왕이시여, 소인은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이승에서 좀 더 살게 해 주십시오.”
원님은 염라대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진심으로 간청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원님의 명부를 보고 아직 젊은 나이인 원님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
“좋다.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서 가거라.”
염라대왕의 허락으로 살 수 있다는 기쁨을 갖는 것도 잠시, 원님을 이끌고 가는 저승사자 하는 말,
“내가 너를 저승으로 데려오느라 힘들었는데, 다시 이승에 가야 하니 너는 나에게 수고비를 줘야 한다.”
이에 당황한 원님은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없습니다.”
고 말하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더니 저승사자는 “사람은 누구나 저승에 곳간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이승에서 덕을 많이 베풀었다면 네 곳간도 재물로 가득 차 있겠지. 그러나 그 반대라면 텅 비어 있을 것이다. 저승에 있는 네 곳간에서 수고비를 내놓아라.”
원님은 그렇게 하자며 저승사자와 자신의 곳간으로 갔다.
그런데 원님의 곳간에는 고작 볏짚 한 단만 놓여 있었다.
그것은 단 한 번, 가난한 여인이 아기를 낳을 때 짚이 없어 쩔쩔맬 때 구해다 주었던
짚이었다.
“쯧쯧. 너는 이승에서 덕을 베푼 일이 없구나.”
“어떻게 하는 것이 덕을 베푸는 것입니까?”
“배고픈 이에게 밥을 나눠주고, 옷이 없는 이에게 옷을 주고, 돈이 없어 힘든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들, 자신이 가진 것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이 덕을 베푸는 것이다.”
저승사자의 말에 뒤늦게 자신의 삶을 뉘우친 원님은 자포자기하며 주저앉아버렸다.
그때 저승사자는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너의 곳간에서는 수고비를 받을 수 없지만, 대신 다른 사람의 곳간에서 돈을 빌려 나에게 줄 수는 있다.”
“누구의 곳간에서 빌려야 합니까?”
“네 고을에 사는 주막집 딸 ‘덕진’이라는 아가씨의 곳간에는 쌀이 가득 넘쳐나니, 그곳에서 빌리고 이승에 가서 네가 빌린 만큼 덕진에게 갚도록 해라.”
그래서 결국 원님은 덕진의 곳간에서 쌀 삼백 석을 빌려 이승으로 갈 수 있었다.
원님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자신이 죽기 전 누워 있던 방안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살아난 기쁨을 즐길 새도 없이 황급히 포졸들을 시켜 덕진을 찾게 했다.
얼마 후 원님은 덕진이 어머니와 주막을 하고 있으며, 마음이 넓고 인정이 많아 손님을 후하게 대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원님은 허름한 차림으로 밤에 덕진의 주막을 찾아갔다.
덕진은 원님의 모습에 개의치 않고 친절하게 맞았다. 그리고 술을 달라는 원님에게 정성스럽게 차린 술상을 가지고 왔다.
“한 잔에 두 푼씩 여섯 푼만 주십시오.”
“술값이 무척 싼 편인데, 무슨 이유라도 있소?”
“다른 집에서 두 푼을 받으면 저희는 한 푼을, 세 푼을 받으면 저희는 두 푼을 받아왔습니다.”
원님은 속으로 놀라면서 다음에 오겠다하고 덕진의 주막을 나왔다.
며칠 뒤 원님은 다시 허름한 차림을 하고서 덕진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술상을 내오려는 덕진을 제지하고 머뭇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돈 열 냥만 빌려 줄 수 있겠소?”
“그렇게 하지요.”
덕진은 방으로 들어가 바로 열 냥을 내왔다.
당황한 원님은 “이보시오, 모르는 사람에게 그렇게 돈을 내주다가 갚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원님의 걱정스런 말에 덕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걱정마시고 형편이 어렵다면 빌려다 쓰시고 나중에 돈이 생기면 갚으십시오.”
덕진에게 열 냥을 받아 나오면서 원님은 생각했다.
‘이런 것이 저승사자가 말한 덕이었구나. 덕진은 이런 식으로 나뿐만이 아닌 불쌍한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곳간에 재물이 가득 찰 수밖에......’
이튿날, 원님은 달구지에 쌀 삼백 석을 싣고 직접 덕진의 주막을 찾았다.
원님을 본 주모는 호들갑스럽게 그를 맞았다.
“주모, 딸을 좀 불러주게.”
“소인의 딸이 무슨 죄를 지었사옵니까?”
“그런 것이 아니니 염려 말게.”
잠시 뒤 덕진은 다소곳이 원님 앞에 섰다.
“내 너에게 빚진 쌀 삼백 석을 갚으러 왔느니라.”
갑작스런 원님의 말에 덕진은 어리둥절해하며 원님을 쳐다보았다.
“흠흠, 여하튼 받아 두어라. 훗날, 그 이유는 너도 알게 될 것이니.”
원님은 받을 수 없다는 덕진에게 강제로 쌀을 맡기며 덕진의 집을 나섰다.
원님의 모습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덕진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와 상의한 끝에 덕진은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니, 뜻있는 일에 쓰도록 하자.’
그리하여 덕진은 다음날 쌀 삼백 석을 전부 팔아서 이전부터 고민해왔던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영암천에 다리를 놓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은 마을 주민을 비롯해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급하게 건너다가 변을 당하거나 불편을 겪고 있던 참이었다. 이에 덕진은 사람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늘 다리를 놓고 싶다고 생각해왔던 것. 후에 덕진이 받은 쌀 삼백 석으로 만들어진 돌다리는 ‘덕진 다리’라고 불렸으며, 덕진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덕진 다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