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죽정(竹亭)마을 옛 담장’은 2009년 문화재청에서 등록한 영암의 유일한 ‘등록문화재 368호’이다. 또한, 근처에 도갑사, 월출산의 구정봉과 미황재가 가까이 있어 그곳을 구경하고 내려온 관광객이 돌담길 감상하며 천천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푸른 녹음이 짙은 여름에 찾은 죽정마을은 관광하기 가장 좋다는 단풍이 물든 계절과는 색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었는데, 집집이 심어진 감나무의 푸른 잎사귀, 다양한 초록빛 작물, 들풀, 담장을 살짝 뒤덮은 담쟁이덩굴과 줄 맞춤 없이 산기슭과 하천의 호박돌, 막돌, 잡석 등의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돌담이 서로 조화를 이뤄,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구림 한옥마을처럼 돌 사이에 황토를 섞은 ‘죽담’ 형식의 돌담이 아닌 흙을 제외한 돌만 가지고 쌓은 ‘강담’ 형식인 죽정마을 옛 담장은 돌과 돌 사이 메워지지 않은 공간이 주는 여백의 미가 바쁜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숨을 트이게 하는 느낌도 주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쌓아올린 돌담은 자연재해가 닥치면 금세 무너지는 단점이 있어 보존에 어려움이 있었기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지속해서 발생하는 재해에 따라 보수공사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 다르게 신고를 위주로 전문가의 지도·조언·권고 등 완화된 보호조치를 통해 소유자의 자발적인 보호노력을 끌어내고 외관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내부 수리를 허용, 적극적인 활용을 촉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건축기준을 완화하고 세제와 수리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죽정마을 이장 최병옥 씨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음에도 아직 도갑사를 가는 관광객들은 마을을 거쳐 가면서 이곳을 ‘쉼터’로 착각해 쓰레기를 투척하거나 주민들이 놓아둔 모판을 실수로 밟기도 한다”며 “우리 마을은 거의 하천이었기 때문에 돌이 많아 사람들이 이집 저집 돌담을 쌓기 시작해 ‘돌담마을’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영암의 관광자원이기 때문에 잘 보존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마을 사람들의 전반적인 생각이다. 그 때문에 관광객들이 등록문화재로써 확실히 인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주민들의 불편이 줄어들 수 있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최 이장은 설명을 마치고 마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박계주 씨의 사택 돌담을 소개했는데, 쌓은 지 약 200년 되었다는 이 돌담은 마을의 다른 돌담보다 더욱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내고 있었다.
양해를 구해 집안 쪽과 바깥쪽에서 둘러본 돌담은 마을 전체를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정취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집안에서 나가는 길목 양옆으로 아담하게 쌓인 돌담과 그 위를 덮은 기왓장, 햇빛을 받아 싱그럽게 빛나는 담쟁이덩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 모습과 어울리는 김영랑의 시가 떠올랐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냇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은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천천히 죽정마을 옛 담장을 감상하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난 후 떠나는 발걸음이 자꾸만 늦춰졌던 것은 월출산 자락을 배경으로 돌담길과 어우러진 평온한 향토적 풍경이 모르는 사이 살며시 마음속에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