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세종과 조선 정치가들의 음악철학

- 임금은 음률을 깊이 깨닫고 계셨다. 신악(新樂)의 절주(節奏)는 모두 임금이 제정하였는데, 막대기를 짚고 땅을 치는 것으로 음절을 삼아 하루저녁에 제정하였다....처음에 박연(朴堧)에게 명하여 종률(鍾律)을 정하게 하였다. 연(堧)이 일찍이 옥경(玉磬)을 올렸는데, 임금께서 쳐서 소리를 듣고 말씀하시기를,
"이칙(夷則)의 경쇠소리가 약간 높으니, 몇 푼[分]을 감하면 조화(調和)가 될 것이다."
하시므로, 박연이 가져다가 보니, 경쇠공[磬工]이 잊어버리고 쪼아서 고르게 하지 아니한 부분이 몇푼이나 되어, 모두 임금의 말씀과 같았다. - (세종실록 31년(1449년) 12월 11일 기사)
세종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교양의 한계치를 보인 군주였다. 우리는 그가 음악에도 비범한 소양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안다. 실제로 그는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음악사업을 벌여 작곡, 작사, 악보, 악기, 연주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도출했다.
세종은, “나라를 다스림에 예보다 중한 것이 없으나 악의 소용도 또한 큰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예는 중히 여기면서도 악(樂)에는 소홀하여 이를 익히지 않는 일이 많으니 가히 한탄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세종이 이른바 ‘음악철학’을 설파한 것이다.
그렇다면 세종은 왜 이토록 음악을 중시했던 것일까? 세종의 곁에는 음악을 잘 아는 신하가 둘 있었는데 박연과 맹사성이 바로 그들이었다. 세종은 이들과 합동 작업으로 조선의 예악을 격조 높게 정비했다.
우리는 박연 하면 음악인으로만 알고 있는데, 그는 집현전 교리, 중추원 부사 등을 역임한 사대부였다. 맹사성은 이조판서와 우, 좌의정을 지낸 명재상이었다. 특히 청백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맹사성은 시문(詩文)에 능하고 음률(音律)에도 밝았고 연주도 심오했다. 대금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손수 악기도 만들었다.
두 사람의 이런 이력은 왜 그들이 세종의 음악사업에 적극 동참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세종을 포함하여 세 사람은 모두 성리학적 가치관을 공유한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박연이 아악에 업적을 남겼다면 맹사성은 향악에서 두드러지는 업적을 남겼다. 그들은 세종의 지악지신(知樂之臣), 즉 음악을 잘 아는 신하로서 당대의 음악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1419년(세종 2년) 설날의 일이다. 세종은 신하들의 하례를 받은 후에 상왕 태종에게 하례를 했다. 상왕은 인정전에서 여러 신하의 하례를 받았는데, 이때의 의례에는 승도(僧徒)는 물론 아랍계와 회회인(回回人)과 왜인(倭人)까지 참여해 국제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상왕 태종이 일어나 춤을 추고 신하들도 함께 즐겼다. 왕은 맹사성, 변계량, 허조 등과 음악에 관해 이야기했다. - (민음조선총서 01, 161쪽)
상상만으로도 흐뭇한 장면이 아닌가? 오늘의 청와대 분위기 분위기는 어떤 것일지를 생각하게 한다. 조선의 정치가들은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유교 고전 『예기』 <악기>에서는 ‘예악 정치가 민심을 하나로 만들어 치세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추구한다’고 했다. 예가 질서를 위한 것이라면 악은 조화를 위한 것이다. 이것은 형정(刑政)의 근본으로서 왕도정치의 필수요건이었다. 당연히 예악의 바탕에는 애민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