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농촌 일자리 사업으로 자리잡은 ‘월출 전통메주’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양부모네 차고에서 시작됐고, 페이스북은 교내 네트워크를 이용한 단순한 SNS에서 출발했다. 이처럼 월출산전통메주영농조합법인 또한 시골의 한 가정집에서 시작됐다.
30여년 전 면사무소에서 군서면 동호리에 겨울철 마을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200만원을 지원하면서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기에는 지원금이 적다고 판단해 부녀회로 사업이 넘어갔다. 부녀회에서 회의를 거쳐 자부담을 더해 사업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자부담을 해야 한다.’는 말에 모두가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겨울철 농촌마을 일자리 사업으로 만들어 갔다.
당시 30대였던 부녀회원들은 ‘우린 아직 젊으니까 지원비를 허투루 버리지 말고, 한데 뭉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하는 젊은 패기로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금전적인 큰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니라 젊은 날 무언가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닭을 키우기로 결정했다. 닭을 키운 일은 탁월한 선택으로 쏠쏠한 수익을 만들어 냈고 닭을 판매한 돈으로 소를 구입해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소를 키우기 시작할 때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다 전두환 소값 파동이 일어났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정권에서 농촌 융자금까지 지원해가며 소 사육을 권장하고는 몇 년 만에 미국산 소와 소고기를 대량 수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신문에서는 연일 폭락한 소값에 빚더미에 앉아 남의 집 머슴살이를 갔다는 기사며, 외국농산물수입을 반대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 등의 축산민들의 안타까운 기사가 연일 보도 됐다. 동호리 부녀회원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시련이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더 이상 일을 진행해 나가기 어려운 지경이었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에 큰 손해를 감수하고 소를 팔아 멸치젓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기관에서 제안했던 된장사업을 받아들여 지금의 ‘월출 전통메주 영농조합법인’이 탄생했다.
처음에는 메주를 띄울 곳도 마땅치 않았다. 참여회원 가정에서 메주를 띄우고, 그 메주로 된장이며 간장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장 판매를 시작해 지금의 사업장을 마련하고, 10여 년 전엔 어엿한 조합법인까지 설립하게 됐다.
직접 콩을 재배하거나 이웃마을에서 재배된 콩들을 사들여 10월 말부터 본격적인 ‘겨울철 농촌 일자리 사업’으로 진행된다. 11월부터 메주를 쑤고 자연 발효와 자연 건조를 거쳐 1월에 장을 담그며 마지막 3~4개월의 숙성으로 완성된 된장, 간장을 5월부터 판매를 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 인터넷과 전화판매를 하고 있는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하다 보니 단골도 생기고, 입소문을 타 경기도, 서울, 광주 등지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메주로 직접 구매하는 사람도 많아 때로는 장류가 부족할 때도 있다고 했다.
재작년엔 지원을 받아 사업장을 개조하고, 작업 과정의 일부를 자동화시스템으로 바꿔 사업을 확장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지원이 많지 않고, 새로 투자해야할 금액이 너무 부담이 되서 포기하기로 했다. 20년의 긴 세월동안 조합원들도 많이 늙었다며, “새벽 2시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등 메주 작업이 보통 고된 것이 아니다. 지금은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직접 하고 있어서 메주를 옮기거나 할 때 힘이 부치는데 분쇄기 설치나 메주를 쉽게 띄울 수 있도록 하는 부분적인 자동화 시스템만 들여도 충분히 지금과 같은 작업량을 소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 생산하고 있는 양의 메주가 현재 인원이 메주를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양이라고도 했다.
월출전통메주 영농조합법인은 지금은 5명의 아주머니들이 꾸려나가고 있다. 조합원이었던 사람들이 이사를 가기도 해 불가피하게 인원이 줄어들기도 한단다.
최성자 씨는 “조합원들이 나이가 많은 만큼 새로운 조합원이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군에서 지원도 받지 않고 있어 새로운 조합원이 들어올 경우 출자가 필요한데 그것을 부담스러워 해 조합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아 조합원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돈을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 아닌 만큼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여기 사업장이 우리에겐 놀이터에요~”라며 일이 없을 때도 사업장에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놀기도 한다고 했다.
최성자 씨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합원들과 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함께 메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