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를 널리 알리고 끊임없는 조사와 연구에 힘써왔던 (사)왕인박사현창협회가 2021년 왕인박사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왕인박사 출생설의 배경에 대해 학술적 연구 보고를 진행했다. 

지방자치 시대에 맞춰 자치단체마다 콘텐츠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위인과 관련된 콘텐츠가 많은데 비해 논증이 부족한 것들이 대다수이다. 사실 근거가 부족한 단순한 가설만으로, 또는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지금도 수없이 생산되고 있는 이러한 콘텐츠들로 인해 소요되는 자원과 시간 낭비는 미래동력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역사는 가설이 아니며 소설도 아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왕인박사에 대한 고증 연구와 조사에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사)왕인박사현창협회와 학자들의 연구는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설령 영암이 아닌 충남 공주, 부여로 확인이 될지라도 굳건히 연구에 힘을 쏟아주길 바란다. 

영암우리신문은 이러한 연구에 대해 지역민들이 함께 알아갈 수 있도록, (사)왕인박사현창협회와 함께 2021 왕인박사 학술대회를 통해 밝힌 영암 출생설의 배경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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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
Ⅰ. 머리말
Ⅱ.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의 몇 가지 문제
  1.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의 연구사적 검토  
  2. 고려 명종 때의 문인 金克己의 시문 분석
  3. 王仁과 道詵의 탄생 설화
  4. 道詵 入唐說의 문제와 月嶽山 聖人
Ⅲ. 잊혀진 전설의 史的 복원 : 王仁의 渡倭와 荒田別 
Ⅳ. 맺음말

Ⅱ.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의 몇 가지 문제

2. 고려 명종 때의 문인 金克己의 시문 분석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에 문헌적 증거로 내세운 것이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암군 월출산조에 전하는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의 시였다. 그는 영암을 답사하면서 감회를 시로 표현하였는데, 그의 시에는 相師, 超海, 謁聖, 不復念故里, 降從睹史誰復知, 倒像閣, 方墳 등이 보인다. 이에 영암출생설에서는 이들을 모두 왕인박사를 추모하는 것으로 본다. 
 
A. 【산천】 월출산(月出山) … ○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월출산의 많은 기이한 모습을 실컷 들었거니, 흐림과 갬 추위와 더위가 모두 서로 알맞도다.(飽聽月山多異姿，陰晴寒暑摠相宜) … 상사(相師)는 신선이 되어 떠났으니 아득히 어디로 갔는가. 삽상한 遺風은 천고에 길이 부는구나. 상사는 앞서 홀로 갈 뜻이 있어, 소나무 아래 돌문에서 날마다 놀았구나.(相師化去杳安往，颯爽遺風千古吹。相師平昔獨往意，松下石閨日棲遲) … 해상(海商) 백 명이 옛날에 바다를 넘어갈 때, 산 위의 신광(神光)을 아득히 바라 보았어라. 산에 올라 성인을 배알하고 마침내 집을 엮으니, 동구(洞口)의 쑥과 띠를 마구 베었네. 종신토록 다시는 옛 마을[故里] 생각하지 않고 시냇물 마시고 초목을 먹으며 바위 문에 의지하네. 푸른 벽에는 분명히 자금(紫金)의 상(像)이라, 내려와 역사를 본들 누가 다시 알 것인가.(海商百口昔超海，山上神光遙望之。登山謁聖遂卜築，洞口蓬茅爭芟夷。終身不復念故里，澗飮木食依巖扉。靑壁分明紫金像，降從睹史誰復知) … 비바람 무정하여 상(像)이 들어 있는 누각을 무너뜨리니, 끊어진 서까래와 깨진 주초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도다. 백 척이나 되는 층층대를 홀로 밟아 멀리 가는데, 方墳을 좌우에 높이 쌓고 쌓았도다. 가까이 사는 늙은이[邇翁] 어릿어릿 갑자기 나를 방문하니, 목 가득 학발(鶴髮)이요 몸뚱이는 닭의 가죽이었다.(風雨無情倒像閣，斷椽破礎紛離披。百尺層臺獨跨迥，方墳左右高纍纍 邇翁貿貿忽訪我，滿領鶴髮身鷄皮) 멀리 북령(北嶺)으로 오르니 멋이 더욱 진진하여(遙登北嶺味尤永), … 물과 구름이 그윽하고 고와 완상하기에 족하니, 과거의 사적을 찾으려는 이 그 누굴까.(水雲幽麗足嘉賞，陳迹可尋纔是誰) 김막(金漠)은 생명을 경시하고 요염(妖艶)을 중히 여겨, 꽃을 꺾고 돌아가지 않으니, 아, 슬프다. 옥소봉(玉霄峯) 아래 이 징군(李徵君)은 처음에는 땅에 집을 짓고 사는 것 같더니, 갑자기 학의 편지를 받고 높은 언덕으로 나가, 아침에는 푸른 봉우리에서 자고 저녁에는 붉은 섬돌에서 자는구나. 슬프다, 두 사람이 마침내 면치 못하였으니, 다만 세상 마음 물질을 잊지 못해서였네.(金漠輕生重妖艶，折花不返吁可悲。玉霄峯下李徵君，初似大塊居具茨。忽値鶴書來赴隴，朝眠靑嶂夕丹墀。嗟哉二子竟不免，只坐塵襟難忘機) …”라고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5, 全羅道 靈巖郡)

위의 시문에 보듯이 과연 이들 표현을 왕인 사적으로 보아야 할지 의문이다. 영암출생설에서는 相師를 ‘왕인이 관상을 잘 한다’는 전승을 반영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왕인이 관상을 잘 한다’는 전승은, 『청장관전서』나 『해동역사』 무렵에야 일본에서 새로이 주장된 내용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동 승람에 인용된 김극기의 시문에는 ‘相師’가 곳곳에 등장하는데, 대체로 의상대사를 지칭하고는 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영암 지역 의상의 흔적은 동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암군 산천조에서 ‘달마산 도솔암에 華嚴祖師 湘公이 거처’하였음을 전하고 있거니와, 이와 관련된 명칭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바다를 건너다 월출산 위의 신광을 보고 성인을 뵈어 동구(洞口)의 쑥과 띠를 베어 집을 짓고 다시는 故里를 생각하지 않았던 주체를 왕인이라 보기도 하지만, 이 구절의 주체는 백 명의 해상(海商)임이 분명하다. 또한 푸른 벽에 새겨진 자금(紫金)의 상(像)은 그 역사적 연원을 알기 어려운 것으로 기술하였거니와, 세월이 흘러 무너진 像閣과 方墳을 본 주체는 김극기 자신이었다. 특히 그가 산을 오르면서 본 方墳이란 영암 지역에 널려있는 오늘날의 장고분 그것을 지칭한 것으로 여겨지며, 홀연히 그를 방문한 邇翁이란 신선풍의 이웃 촌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극기는 당시에 像閣이 세월이 흘러 무너졌으나 푸른 벽에 새겨진 상을 자금(紫金)의 상(像)으로 인식하였고, 방분을 비롯한 이들의 사적을 누가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감회를 읊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에 김극기의 시에서 왕인을 특정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옛날 100명의 행상이 보았다는 神光이나 謁聖, 그리고 자금(紫金)의 상(像)이나 方墳 등은, 고려 중엽에 월출산을 둘러싸고 이어온 과거의 사적이 있었음을 반영하며, 도선과 또다른 神聖한 존재에 대한 전승이 있었을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을 듯하다.

3. 王仁과 道詵의 탄생설화

『조선환여승람』 영광군 名宦조와 名所조에는 다음과 같이 왕인의 영암 출생설을 전한다. 

B. [名所] 聖基洞 : (영암)군 서쪽 120리에 있다.(郡西百二十里) ○ 백제 고이왕 때 박사 왕인이 여기에서 태어났다.(百濟古爾王時博士王仁生於此) ○ 新羅 眞德王 때에 국사 道詵이 여기에서 태어났으므로 聖基洞이라고 한다.(新羅眞德王時國師道詵生於此故曰聖基洞)  鳩林部曲 : 聖基洞 西쪽 인근 背山에 있다.(在聖基洞西隣背山) 서호의 풍광이 발고 아름답다(西湖風光明麗) 옛날 도선이 처음 태어날 때에 수풀 중에 버렸는데 비둘기가 와서 깃으로 덮어 감쌌으므로 이름하였다(昔道詵初生 棄之林中 鳩來覆翼之故名) ○ 김진상이 시를 남겼는데(金鎭商有詩) 낭산의 경계에 달빛 산이 덮고(朗山之境月山套) 산의 빛깔과 계곡의 빛이 옥금을 빛나게 하는도다(山色溪光燦玉金) 길과 밭자락 정원이 모두 뛰어난 경치려니(若道田園兼勝槩) 호남 제일은 이곳 구림이어라(湖南第一此鳩林) 
[名宦] 王仁 : 백제 고이왕 때 박사관으로 (유학의) 깊은 뜻에 정통하였다. (고이왕) 52년 을사년에 일본에 사신으로 가면서 冶工과 釀造人, 吳服使 등을 거느리고 가서, 千字文과 論語를 應神天皇에게 전하여 익히도록 진헌하였다. 經典과 儒學, 기타 제도가 이에 시작하였다. 墓는 日本大阪府 北河內郡 枚方에 있고, 그 아래에 祠를 세웠다.(百濟古爾王時博士官精通奧意五十二年乙巳使於日本冶工及釀造人吳服使等率往 傳習進千字文論語於應神天皇 經典儒學其他制度始此 墓在日本大阪府北河內郡枚方其下建祠)

위와 관련하여 일제 강점기에 편찬된 『湖巖誌』 고적조에서 영암이 왕인의 출생지임을 특정한  것은 일제 강점기의 인식을 투영하였을 수도 있다. 1932년 영산포 본원사 주지인 일본승려 아오키 게이쇼(靑木惠昇)는 『왕인박사 동상 건설취지문』에서  ‘… (왕인) 박사는 원래 타국의 신하로 훌륭함이 이와 같고 지금은 日鮮一家가 되었으니… 박사의 옛 땅인 영암군 구림의 유적은 … 나는 관청의 허가를 얻어 이 영적을 장엄하게 박사의 동상을 건설하여 국민 보초의 성의를 다하고자 한다. … 이는 … 융화선감의 쐐기가 될 것이다. …’라고 하여, 왕인박사 동상을 영암에 설립하고자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