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프랑스의 한 박물관에서 중국으로 인한 소동이 벌어졌다. 프랑스 낭트 서부에 위치한 브르타뉴 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할 칭기스칸 전시회 계획에 중국 정부가 간섭한 것이다.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은 ‘칭기스 칸(Genghis Khan)’, ‘제국(Empire)’, ‘몽골(Mongol)’ 등이 포함된 특정 용어들을 뺄 것과 전시 책자, 지도, 전설에 관한 편집 권한을 요구했고, 박물관 측에서는 이를 중국의 검열 행위로 간주하여 전시회를 연기하게 되었다. 몽골인들이 보기엔 대단히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3세기 부락들 간 내전을 종식시키고 몽골을 통일한 칭기스칸은 ‘몽골인’ 정체성을 형성한 몽골의 국부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에 중국이 끼어드는 것은 ‘몽골사 약탈’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중국의 만행에 곤혹을 치르는 국가는 몽골만이 아니다. 현재 중국은 몽골, 티베트, 위구르, 중앙아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주변 역사와 전통문화를 향해 대대적인 침탈을 강행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2002년 ‘동북공정’을 시작한 이래 부여와 고구려,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가르치고 있으며 최근엔 한복과 갓, 김치 등을 자국의 전통으로 소개하여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런데 정작 중국인들은 한국을 오히려 도둑국으로 몰아가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 행세를 하며 책임을 덮어씌우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도 역사를 왜곡하는 소위 ‘유사사학자’ 부류가 있다. 그러나 중국의 침탈 행위는 역사에 무지한 소수 사람들의 행동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인민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주입시킨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비교가 안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국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란 무엇일까?

중국이 주장하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현(現) 중화인민공화국이 점유하는 영토 내부의 역사는 모두 중국사이다. 따라서 중국 내에 존재하는 고구려의 역사와 유물, 유적 또한 중국 소유이다. 실제로 중국은 고구려가 한족(漢族) 왕조는 아니지만 중국의 고대 소수민족이 세운 국가라 주장하고 있다. 즉 중국은 고구려와 대한민국과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억지에 우리는 어떻게 반박해야 할까? 중국이 주장하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은 다민족국가인 중국이 55개 소수민족을 통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내세운 논리에 불과하다. 중국이 고구려의 영토를 점유하고 있다는데, 당시 고구려 영토는 만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고구려는 최대 한반도 중남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고구려는 평양으로 천도하여 중심을 한반도 내부로 이동하였던 것이다. ‘고구려 땅을 중국이 갖고 있으니 중국사’라는 결론은 전제부터가 오류이다.

정말로 고구려를 중국사로 취급하려면 고구려는 분명 중국 왕조의 정체성을 드러냈어야 한다. 그러나 역대 중국 왕조에서 편찬한 모든 정사(正史)에 고구려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역대 중국 사서(史書)들에는 일관되게 고구려를 외국으로 분류했다. ‘중화사상’을 표방하며 사방(四方) 주변부를 오랑캐 취급했던 중국은 동쪽에 자리한 종족들을 가리켜 ‘동이(東夷)’라 불렀는데 고구려를 비롯한 한국계 종족 및 왕조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하나같이 중국의 지리지가 아닌 ‘동이열전’에 수록했다. 『후한서』 동이열전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구당서』 및 『신당서』 동이열전 · 『양서』 동이열전 · 『송서』 이만열전 등 관련 사서만도 부지기수이다. 

고구려를 우리 왕조로 취급하는 인식은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도 이어진다. 『송사』 외국열전 고려 편에는 아예 “고려의 본래 이름은 고구려”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또한 『고려사』에 따르면 몽골의 쿠빌라이가 칸에 오르기 전 자신을 방문한 고려 태자를 환대하며 “고려는 만 리나 떨어져 있는 나라이고 당 태종이 친히 정벌하였으나 굴복시키지 못하였는데...(하략)” 라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후삼국 시기 궁예와 왕건은 모두 국호를 ‘고려’라 하였는데 이것은 옛 고구려 유민 의식을 품고 있던 패서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내세운 것이었다. (고구려 장수왕이 국호를 ‘고려’로 바꾸어 멸망할 때까지 사용했다.) 고려의 건국 배경이 이러했기에 서희가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지을 때 “우리나라가 바로 고구려의 옛 땅이기 때문에,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하였다.” 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15세기 ‘최부’라는 선비가 펴낸 『표해록』에는 명나라 사람이 “당신 나라는 무슨 장기가 있어 능히 수나라, 당나라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최부는 고구려의 강성함을 이유로 들며 신라가 삼한을 통일했다고 답변했다. 고구려가 통일제국인 수 · 당의 침공을 연이어 물리쳤으며 조선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명나라 사람도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임진왜란 때 들어서면 조선에 들어온 명나라 장수들이 “귀국은 고구려 때 강국이었는데 지금은 왜 그리 약해졌나?”라며 조선을 질책하는 기록이 다수 나온다.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고려와 조선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고려는 평양에 ‘동명성제사’란 사당을 세워 국가에서 직접 제사를 올렸다. 조선시대에 명칭을 ‘숭령전’으로 바꿔 이를 계승했다. 전(前) 왕조에 대한 사서 편찬과 제사는 계승을 상징하는데 중국에서 고구려 계승 움직임을 보인 전례가 없다.
고구려 장수왕이 국호를 고려로 바꾸고 이를 계승한 태조가 왕씨(王氏) 고려를 건국했다. 그리고 고려에서 오늘날 ‘KOREA’가 나왔으니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어원인 셈이다. 숱한 왕조들 사이에서 고구려가 한국인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존재임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상으로 고구려가 한국사인 근거를 살펴보았다. 지면 사정으로 부족하긴 하지만, 근거로 든 기록은 대부분 당대 중국인들의 생각이 담긴 중국 기록들이다. 역대 중국 왕조 누구도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가 아닌 한국 왕조로 취급해왔는데, 정작 1949년에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숱한 증거를 무시하고 고구려사를 빼앗겠다고 왜곡을 자행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다행히 중국을 제외한 외국 학계에서는 고구려를 ‘Korean Kingdom’으로 분류하고 있다. 물론 학계와 대중적 인식은 괴리가 상당하고 중국 또한 이 점을 노리고 있으니 우리는 한시도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