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를 널리 알리고 끊임없는 조사와 연구에 힘써왔던 (사)왕인박사현창협회가 2021년 왕인박사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왕인박사 출생설의 배경에 대해 학술적 연구 보고를 진행했다.
 
지방자치 시대에 맞춰 자치단체마다 콘텐츠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위인과 관련된 콘텐츠가 많은데 비해 논증이 부족한 것들이 대다수이다. 사실 근거가 부족한 단순한 가설만으로, 또는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지금도 수없이 생산되고 있는 이러한 콘텐츠들로 인해 소요되는 자원과 시간 낭비는 미래동력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역사는 가설이 아니며 소설도 아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왕인박사에 대한 고증 연구와 조사에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사)왕인박사현창협회와 학자들의 연구는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설령 영암이 아닌 충남 공주, 부여로 확인이 될지라도 굳건히 연구에 힘을 쏟아주길 바란다.
 
영암우리신문은 이러한 연구에 대해 지역민들이 함께 알아갈 수 있도록, (사)왕인박사현창협회와 함께 2021 왕인박사 학술대회를 통해 밝힌 영암 출생설의 배경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1920년대 전남유림의 동향과 왕인의 영암 출신설 (2)

- 차례 -
Ⅰ. 머리말
Ⅱ. 1925년 『창명』 제5호, 왕인박사의 영암 거주
Ⅲ. 1925년 『창명』 제5호, 왕인박사의 사우 건설
Ⅳ. 1927년 『신민』 제25호, 왕인박사의 영암 출생
Ⅴ. 1928년 『조선신문』, 왕인박사의 영암 출생
Ⅵ. 맺음말

<351호에 이어>

이제 본격적으로 왕인 이야기를 해보자. 1925년 󰡔창명󰡕 제5호의 잡보란에 실린 ｢古百濟國博士官王仁氏祠宇建設發起文｣이란 1편의 글이 현재까지는 왕인의 영암 출신설을 제기한 최초인 것 같다. 이 글은 작자는 밝혀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발행인⋅편집진에서 작성한 것 같다. 그리고 순 한문으로 작성되었다. 그 가운데 다음의 구절이 들어 있다.

百濟國都, 在今扶餘郡, 曾管京畿一部及忠淸全羅全部, 傳說, 王博士本居于全南之靈巖郡云則, 國境及其人, 並關係于本道矣.

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검토해보겠다. ①백제국의 수도는 지금의 부여군에 있었고, 백제국은 지금의 경기도 일부와 충청⋅전라도 전부를 관할하였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전라도가 백제 땅이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넣은 것 같다. ②전설에 의하면, 왕인박사는 본래 전남의 영암군에서 살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 구절대로 해석하면 이는 왕인박사의 영암 거주설이 되는 셈이다. ③국경과 왕인이 모두 본도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암이 백제의 영토이고, 왕인이 영암 거주자였다는 말이다.

결국 유도창명회에서 1925년 1월 10일자로 발간한 󰡔창명󰡕 제5호에서 편집진은 왕인은 전라도 영암 출신이라는 말을 ‘傳說’을 빌려 공개하였다. 당시 󰡔창명󰡕 발간인은 정국채(鄭國采)이다. 그는 1910년부터 영암공립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한 것으로 나온다. 1919년 10월 31일자로 구림공립보통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일제에 의해 한국인으로 처음 교장에 임명된 전국 18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구림초등학교 교장 재임 중 동맹휴학을 한 학생을 퇴학처분 할 것이라는 가정통신문을 1920년 6월 15일자로 발송한 적이 있었다. 정국채는 2년 뒤 1921년에 도 학무과 소속 시학(視學)이 되어 1925년 당시까지 근무하고 있었는데, 당시 도 시학은 3인으로 2인은 일본인이고 1인이 한국인이었다. 그는 시학으로 있으면서, 1923년 11월 15일자 󰡔창명󰡕 제2호부터 발행인을 맡아 왔고, 󰡔창명󰡕 제2호에 ｢心之力｣, 제3호에 ｢風水와 祕訣에 勿惑하라｣란 글을 각각 실었다. 이후 그는 군수 등을 거쳤고, 그로 인해 현재 친일인사로 분류되어 있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 유도창명회와 󰡔창명󰡕지에 왕인박사의 영암 출신설을 제공한 사람으로 영암에서 오랜 교직 생활을 한 정국채를 우선 지목할 수 있다.

한편, 󰡔창명󰡕 제5호 논설란에 전라남도 학무과장 겸 시학관(視學官) 大塚忠衛가 쓴 ｢王仁氏와 日本儒道｣이란 글이 실려 있다. 시학관은 학무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로, 도청 내무부 학무과 소속으로 학무과장이 겸하고 있었다. 그는 󰡔창명󰡕 제1호에 ｢교육진흥상 산업장려의 필요를 논함｣, 동 제2호에 ｢본도 신교육 시설에 취하여｣, 동 제4호에 ｢보습교육 실시 문제｣란 논설을 게재하였으니, 유도창명회 조직과 󰡔창명󰡕 발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는 ｢王仁氏와 日本儒道｣에서 백제 왕인박사는 일본에 논어, 천자문은 물론이고 단야, 직공, 주조 등을 전한 일본의 대은인이요 조선인의 모범적 인재라고 하면서, 그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은 없다. 이렇게 보면, 유도창명회와 󰡔창명󰡕 및 전남 유림을 관리하는 시학관으로서 그가 왕인의 영암 출신설을 몰랐는가, 아니면 알면서도 조심스러워 서술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최소한 전남 출신이라는 점은 전제하고서 글을 써서 게재하였을 것이다.

어떠하든 간에, 1920년대 들어서 ‘內鮮融和’가 강조되면서 그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되는 백제인 왕인박사가 주목되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왕인박사는 백제 어디 출신이고, 어디에서 도항을 하였을까 등에 대해 관심이 증폭되었을 것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1925년 당시 󰡔창명󰡕에는 영암 거주설이 게재되었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1925년 6월 5일자 󰡔조선신문󰡕에는 일본문교의 조(祖)이고 내선융화의 신(神)인 왕인박사가 백제 수도 부여를 출발하여 금강을 따라 내려가 일본에 건너갔다고 보도되어 있다.

Ⅲ. 1925년 「창명」 제5호, 왕인박사의 사우 건설

앞에서 말한 1925년(대정 14) 1월 10일자 󰡔창명󰡕 제5호의 잡보란에 실린 ｢古百濟國博士官王仁氏祠宇建設發起文｣은 왕인박사의 사우 건립에 관한 글이다. 앞에서 인용한 왕인박사의 영암 거주설 뒤에 다음의 기사가 뒤따라 있다.

今聞王博士之墳墓 在於大阪府北河內郡枚方 行路指點 樵牧咨嗟 噫舊日則 航路隔絶 問聞無徵 現今朝發夕至 殆同隣里 其墓下 尙無數間祠宇 不問內鮮安得無遺憾哉. 況本會處在全南 感王博士之遺風 非比餘人 若含默默言 是使此文化之祖 無聞於千載之下 生於千載之下者 由何而能講明斯道乎. 故玆敢發起 欲建設一祠宇于其墓側 使一般人士 永久崇拜喚起內鮮思想之融和 窃願 有志僉位 依左記捐若于金 俾此文化事業 有始有終 千萬千萬.

이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검토해보겠다. ①왕인박사의 묘가 大阪府 北河內郡 枚方에 있는데, 참배할 사우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교통이 좋아 쉽게 왕래할 수 있으니 사우를 건립하여 일본인이건 한국인이건 간에 참배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말이다. ②본회 유도창명회는 전남에 있어 왕인박사의 유풍을 다른 사람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끼고, 만약 이를 함묵⋅묵언하면 ‘文化之祖’를 천년 안에 다시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리라는 것이다. 일본에 선진문화를 전래해 준 왕인박사가 전남 출신이라는 말로 해석된다. ③발기회를 조직하여 왕인박사 묘 옆에 사우를 건립하고자 하오니 좌기(제시되어 있지 않다)와 같이 의연금을 납부해주라는 것이다. 그것이 일반인사로 하여금 왕인박사를 영구히 숭배하게 하고, ‘內鮮思想’의 융화를 환기시키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1925년 1월 현재, 일종의 ‘왕인박사 사우 건립 발기회’가 유도창명회에 의해 조직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창명󰡕 제5호의 권두사에도 밝혀져 있는데, “千年前 文化祖 王仁氏의 祠宇 建設을 發起하얏슨즉”이라고 하였다. 즉, 유도창명회에서 이미 사우 건립을 결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뒤에서 말하겠지만, 사우 건립은 1928년에야 단행되었다.

그러면 왕인박사의 묘가 대판에 있다는 사실은 언제 한국에 알려졌고 공론화되었을까? 현재로서는 ｢매일신보｣ 1919년 3월 29일자 기사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거기에 渡邊暢이라는 사람이 쓴 ｢百濟王仁博士墓｣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그는 千葉縣 출신으로 司法省 法律學校 졸업 후, 1908년에 법관으로 한국에 와서, 1919년 당시 서울에 고등법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백제 왕인박사의 묘가 대판부 북하내군 관원촌 대자장미 동남 5정 쯤의 지점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묘를 찾기 위해 북하내군 役所에서 물으니, 대판시 편정역에서 열차를 타서 장미역에서 내려 5정여보를 걸으면 왕인 묘에 이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去年보다 今年은 조선 각지로부터 觀光探勝을 겸하여 渡海의 擧를 催하는 風雅人士도 多할지니”라고 하였다. 이는 한국에 있는 사람들(한국인과 일본인 다 포함)이 왕인묘를 관광이나 탐승하기 위해 일본으로 적지 않게 가고 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는 말로 해석된다. 

도변창 글의 보도 이후, 왕인박사 묘가 대판에 있다는 말은 전국 곳곳에 알려졌다. 특히 영암 지리지에 그 사실이 연이어 실리게 되었다. 현재 확인된 바로는 󰡔호남지(湖南誌)󰡕가 최초로 보이는데, 이는 1924년 봄에 호남장보(湖南章甫)가 도지 편찬을 시도하였으나 11년 지난 1933년에야 발간되었다. 그 영암군편 고적 조항에 왕인박사에 대해 

古百濟 近肖古王時人 奉論語及周興嗣千字 入日本 獻于應神皇 遂爲皇子師傅 日本漢學從此始傳 墓在大阪府北河內郡枚方 而建祠宇墓下 只今崇奉云.

라고 기술되어 있다. 도지 편찬이 1924년부터 시도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왕인박사 묘의 대판 존재 사실 또한 그 무렵에 확산되었을 것 같다. 이와 비슷한 기사는 1937년 무렵에 발간된 󰡔조선환여승람󰡕 영암군편 명환 조항에도 “墓在日本大阪府北河內郡枚方 其下建祠”라고 실려 있다. 모두들 묘 아래에 사우가 건립되어 있다고 하였으니, 전남 유림들의 노력으로 건립되었을 것 같다. 어찌하든 영암 지리지에 수록된 왕인박사 묘가 일본에 있다는 기사는 왕인이 영암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결과인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