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입은 여인이 나와 논란이 됐다. “김치, 동해 바다, 발해, 이제는 한복까지. 주변국들에서 끊임없이 우리의 유산을 뺏어가려고 해요. 모두들 나 몰라라 하면 한국인은 어디에 설 수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우리네들의 옷을 지키고 계승하는 거예요”

한복은 우리 그 자체 

“왕인박사 유적지 전시관의 백제인의 속옷은 신문지 였어요” 대학원 시절 열심히 옷을 만들어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전시하려고 보니 속옷을 가져오지 않았다. 부랴부랴 구림마을에 사는 친척들에게 신문지를 얻어와 만든 것이라는 고영한복연구가의 미소 나는 얘기다.

군서면 구림마을에서 5년째 살고 있는 고영 한복연구가는 40년간 손바느질로 전통한복을 지어왔다. 전남대 의류학과를 79학번으로 졸업 후 몇몇 기성복 회사에 지원했지만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직후라 취직이 어려웠다. 그 때 뿌리 깊은 해주 최씨(영암) 자손인 친정어머니의 한복 짓는 걸 배워보란 권유로 한복인생이 시작됐다.

2008년에는 서울에서 ‘다비타’라는 한복제작회사를 설립해 ‘인수대비’, ‘꽃들의 전쟁’ 등 다양한 사극드라마와 조선왕릉 제관의 복식 등을 협찬했다. “예쁘게만 입으려는 배우들을 설득하며 철저한 고증에 힘을 써 재현한 옷이에요. 수십 권의 옛 기록들을 뒤져보고 난 후에야 옷 한 벌이 탄생해요. 이 책은 9개월 동안 기다려 100만원을 주고 힘들게 구한 거예요” 고영한복연구가의 홍적삼은 ‘가례도감’의 섬세한 문양과 각도까지 복제한 듯 같다.

“한반도의 자연을 닮은 오방색과 곡선으로 이뤄진 한복은 우리의 삶과 정서가 녹아있는 우리 그 자체에요. 의식주라 하잖아요. 옷을 공부하다보면 역사가 보여요. 하지만 우리는 문화를 쉽게 잃어왔어요”라며 직접 지은 수의를 보이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수의는 원래 고인이 생전에 입던 것 중 가장 좋은 옷을 입혔는데 주로 비단과 명주로 만들어졌다.

부모를 여읜 자식이 죄인의 의미로 가공하지 않은 가장 거친 삼베옷을 입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비단을 수탈하고 우리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조선의 수의를 삼베로 지으라고 명했다. 고인의 삼베 수의와 유가족의 검은 상복은 일본의 잔재와 서양식 장례가 이상하게 접목된 결과다. 

구림은 안동하회마을 뺨치는 명촌이야

고영 한복 연구가는 명성황후의 시해에 분개해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 ‘최병손’의 외가 후손으로서 구림마을이 좋아 지난 2018년 수십 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서 내려왔다. 

구림은 월출산의 문필봉이 감싸 안고 구림천을 따라 회사정과 대동계가 유학의 맥을 이어온 유서 깊은 한옥 마을이다. 고영 한복연구가는 구림마을의 역사에 한복을 더하면 최고의 문화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자부 했다.   

고영 한복문화연구가는 한복에 대한 친근감을 주기 위해 영암에 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지난 2019년과 2020년에 구림마을서 ‘한복 입고 유유자적’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아이들은 고영 한복연구가가 직접 만든 한복을 입고 한석봉의 서예를 체험하고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떠나기 위해 배를 탄 상대포와 한옥마을 일대를 걸었다. 유유자적 거닌 후엔 전 요르단 대사관, 공연기획자 등과 함께 토크콘서트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1년도에는 구림 휴림한옥펜션에서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순조의 딸 복원공주가 입은 혼례복을 고증한 전통 혼례를 4차례 열었다. 노부부의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 혼례를 올리는 ‘리마인드 웨딩’이 인기가 좋았다. 차 마시기, 전통손바느질, 조각보 만들기 등 전통 체험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한복이 일상화 될 순 없겠죠. 그래도 특별한 날 기분 좋게 꺼내 입으며 우리 것의 자부심을 느꼈으면 해요. 우리나라의 성인식인 ‘관례’는 인간의 일생에서 큰 예식이었어요. 영암의 고등학생들만큼은 졸업할 때 ‘관례’와 연계해서 한복을 입고 졸업 해야죠”  

고영 한복연구가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려고 한다. 구림공업고에 한복디자인과나 동아리가 생기면 취업과 연계해서 인재를 고용하겠다는 포부로 계속해서 한복문화운동에 도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