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만 해도 고급 생활용품으로 귀하게 쓰였지만, 지금은 플라스틱 빗의 출현으로 참빗을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고집스럽게 장인정신을 가지고 전통방식으로 참빗을 만들어 가는 이가 영암에 살고 있다. 바로 이상평 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4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여름 햇볕이 내리쬐는 망호리 주택 마당 한편의 비닐하우스 안. 무언가를 뚝딱뚝딱 쪼개는 소리가 들린다. 살포시 비닐하우스 문을 여니 두 손에는 연장과 대나무를 들고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이상평 씨가 참빗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씨는 망호정 마을 뒷산에서 가져온 3년 된 대나무를 칼로 세밀하게 쪼갰다. 그 다음에는 쪼갠 빗살을 연장으로 훑어내며 매끈하고 얇게 만들었다. 
이씨는 110개의 빗살들을 굵기가 1.2㎜될 때까지 고르게 훑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든 정교한 빗살 110개를 실로 엮고 물에 담가 염색한다. 아교로 등대를 붙이고 빗살 끝을 다듬으면 마침내 참빗 하나가 완성된다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면서 웃으며 말했다. 

70년 동안 참빗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상평 씨는 8살 때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망호정 마을사람들이 대나무밭에 오순도순 모여 참빗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 참빗을 접했다. 
이렇게 참빗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450년 전부터 참빗 만드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망호정 마을에 이상평 씨가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씨는 “임진왜란 전 10대조 할아버지 때부터 망호정에 대나무를 심고 참빗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상평 씨가 처음부터 영암 망호정 마을에서 살면서 참빗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청년이 돼 영암 망호정 마을을 떠나 서울 종로구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무형문화재 15호 참빗장 이식우 씨의 타계로 망호정 마을 전통 참빗 만드는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상평 씨는 고민 끝 2004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참빗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암 망호정 마을의 참빗은 조선시대에는 8도 전국에서 최고라 명성을 날려 많은 주문이 들어왔고 임금님 진상품으로도 올려졌다. 1930년대에는 일본과 중국 미국 만주에 수출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 참빗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며 망호리 참빗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지금은 이상평 씨 혼자 전통방식 그대로 수작업을 제작하는 탓에 많은 노력에 비해 수입도 거의 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내 홍이례 씨와 농사일도 병행하고 있다. 
이씨는 충청도 홍성에 위치하고 있는 ‘목소장’이라는 곳에 참빗 1개당 9000원으로 한달에 200개 정도만을 납품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씨는 “참빗을 하나 만드는데 3시간이 걸려 하루에 열 개 만들기도 벅차다”며 “다행히 아내가 참빗 만드는 것을 도와주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그가 고집스럽게 참빗 만드는 전통 기술을 이어가는 이유가 또 있다. 
이씨 본인이 죽으면 망호리 참빗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몇년전만 해도 마을에 참빗 기술자들이 다섯 분 계셨는데 모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씨는 “내 목숨이 붙어있는 한은 계속 참빗을 만들겠다”며 “참빗장 전통무형문화재를 보유해 나의 대를 잇는 후계자라도 있었으면 한다”고 소망을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