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죽정서원길 구림한옥마을의 한옥 한 채에서 신명나는 풍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로 우리 악기와 노래, 놀이로 공연을 펼치는 전통예술단체인 ‘소리터’에서 주관하는 ‘야락잔치’가 열렸기 때문이다. 

판소리 장단에 맞춰 북을 치며 “얼쑤”하고 신명 나게 추임새를 넣는 고수는 소리터 대표 임상욱씨(54·군서면)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양태옥류 진도북놀이 이수자이자 제29-3호 판소리고법 추정남류 이수자인 임씨는 지난 6월에는 ‘구림마을로’ 문화행사에서는 MC를 맡아 축제도 진행했다. 또 지난 10일에는 구림공고에서 ‘구림농악’을 주제로 세미나도 주최했다. 지난 5월 달 시종초 공연에서는 덩실춤도 췄다. 
이후 뵌 만남에서 임상욱씨는 “무슨 일 하는 사람이냐고요? 전 국악인이에요”라고 자신을 표현 했다. 

88년도 목포과학대학교에 입학해 1학년 때 과 선배들이 가톨릭청년연합회에서 운영하던 풍물패 동아리를 같이하자고 끌려간 게 임씨의 국악인생의 시작이었다. 임씨는 “풍물놀이는 꽹과리, 장구, 북의 쩌렁쩌렁하게 명쾌한 소리와 역동적인 춤사위, 광대들의 연기, 놀이가 합쳐진 종합예술이에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놀이판의 매력에 빠졌죠”라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 후에는 건축학과의 전공을 살려 현대건설에서 일하기도 했고 기름 장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도 풍물패 활동은 놓지 않고 틈틈이 목포 가톨릭문화회관에서 공연과 강의를 해왔다. 
29살에는 한 가야금 학원의 제안으로 가야금 학원 안에서 풍물을 가르쳤다. 임씨는 “같은 국악이라지만 가야금과 풍물은 결이 달라요. 차분한 가야금 음조와 우리 서민들이 신나게 뛰노는 풍물이 어울리기 힘들었죠. 그때 풍물놀이를 중심으로 하는 전문예술단체를 만들자고 마음 먹었어요”라고 말했다. 임씨는 학원을 나왔고 풍물패 단원들을 모아 1997년도에 ‘소리터’를 만들었다. 소리터는 목포를 중심으로 여러 행사를 다니며 본격적인 풍물 공연을 시작했다. 

2018년에는 영암문화원의 초청을 받아 구림마을에서 8차례의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깜짝 놀랐죠. 예술회관이나 공연장의 딱딱한 콘크리트, 대리석 공간이 아닌 풀 위에서 산을 바라보며 한옥의 능선을 배경으로 공연을 선보인다는 게 얼마나 멋진 건지 깨달았어요” 
그 후 임씨는 2019년에 구림마을 하천 옆 한옥으로 이사를 왔다. ‘소리터’도 임씨를 따라 영암으로 주소를 옮겼다. 임씨는 지금 ‘달뫼설북놀이’를 연구 개발 중이다. 북을 높게 들어 월출산의 달을 묘사하고 단원들의 동선으로 월출산맥을 표현해내는 영암만의 북놀이이다. 

영암의 여러 학교로 찾아가서 풍물놀이에 대해 설명해주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마을사람들이 언제든 와서 마당에서 벌어지는 풍물판을 즐길 수 있도록 여는 ‘야락(夜樂)잔치’도 9번째 열었다. 판 굿에서 장구재비가 혼자 나와 가락으로 솜씨를 보이는 설장고, 북장수들이 나와 노는 설북놀이, 선비가 기생을 꼬시는 장면을 풍자한 춤인 한량무 등 여러 종류의 풍물놀이를 보다 세분해서 공연을 하고 있다.
수십년간 춤을 추고, 상모를 돌리다 보니 임씨는 손목, 발목, 허리 등의 관절을 다 수술한 상태다. 하지만 임씨는 공연예술인으로서 살아오며 가장 어려운 점을 생계로 꼽았다. 

임씨는 “몸이 상하는 건 괜찮아요. 감수해야죠. 저 혼자면 입에 풀칠만해도 괜찮은데 책임질 가정이 있으니 수입이 없으면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목포에서 활동했을 땐 풍물패로 ‘소리터’가 유일했었고 자리를 잘 잡아서 크게 힘든 적은 없었지만 구림으로 이사 온 후 코로나 19가 터지고 공연활동이 모두 중지됐다. “수입이 0원이었죠. 아내가 돈 좀 벌어오라고 하면서도 그만둘까? 물으면 그래도 슬며시 고개를 젓더라구요. 다행히 아내가 일을 하고 있어서 제가 피를 좀 빨았죠” 하며 웃었다. 

임상욱 대표는 앞으로도 국악인으로 살 예정이다. 
“영암이 문화예술분야가 약해요. 이제는 제가 직접 나서 보여주는 것보단 국악과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마을 축제를 기획하려고요. 풍물을 더 연구하고 요즘 친구들이 재밌게끔 개발도 해야죠. 구림의 전통한옥마을에서 풍물판을 보며 웃고 또 그 흥을 우리 전통 춤사위로 표현하는 날이 왔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