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설 강사와 16명의 천사들이 만들어가는 하모니
딱딱·지루한 음악 ‘NO’, 재미 가득한 음악 ‘OK’

주사위 던지고 달리기, 풍선 많이 튕기기… 체육대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이다.
하지만 지역아동센터와 학산 초등학교가 돌봄교실 연계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올 4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합창수업의 모습이다.
합창이라고 하면 왠지 엄숙하고 딱딱 진행될 것이라고 연상되지만 학산초등학교 합창부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콩나물 모양의 정체모를 음표들이 잔뜩 그려진 악보를 비롯해 음악수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육용 악기나 합창에 필요한 다양한 음악자료들 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수업은 초빙 강사이자 합창부의 선생님인 박설 교사의 진행에 따라 아이들이 뛰고 구르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자연스러움 속에서 음학(學)이 아닌 음악(樂)을 배우고 있었다.
얼핏 보면 체육시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놀이와 교육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합창의 가장 큰 질서와 화합을 배우고 다소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기성세대들의 관점에서 음악이라는 수업이라고 보기 힘든 프로그램들이 이어지지만 아이들의 작은 입에서는 박설 교사의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동요를 따라 부르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습득하고 있었다. 이 과정 속에서 박설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이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 하는데만 국한된다.
누가 잘했고 못했고 이것은 맞았고 틀렸다는 지적하고 개입하는 모습은 전혀 없다. 아이들이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과정만 지켜볼 뿐이다. 단, 그 과정 속에 있어야 할 질서와 규칙만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것이 박 교사가 하는 전부이다.
또 아이들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질서와 규칙 속에서 즉흥적으로 음악적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나름의 화음을 만들고 하모니를 맞춰가고 있었다. 교육의 틀이라는 정형화된 방식에 익숙해진 기성세대들에게는 다소 의아한 모습이지만 분명 아이들은 수업을 통해 기초 음계를 익히고 합창의 기본자세를 배우고 있었다.
흔히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은 결과를 위한 과정이어야 하고 명확한 결과가 도출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학산초 합창부에서는 이러한 결과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합창이라는 매개를 통해 모인 16명의 학생들이 관계를 맺고 음악을 통해 인성을 키우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합창실력이 형편없다고 판단하면 큰 오산이다. 지난해부터 미암지역아동센터에서 1년여 동안 수업이 진행되어 온 터라 아이들의 합창 실력은 인증을 받았다. 지난해 동아보건대학교(구 동아인재대학)와 광주교대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다.
특히 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만화영화 ‘마징가Z’ 주제곡에 아이들이 직접 개사해 ‘낙지파워’라는 노래로 재탄생 시켰으며 기자의 갑작스런 요청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꼴찌를 위하여’라는 동요를 멋들어지게 합창하며 베일에 감춰져 있던 학산초 합창부의 실력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결에 대해 아이들이 음악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라고 귀뜸했다. 박 교사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아이들과 다섯 가지 약속을 하는데 첫 번째는 즐겁게, 두 번째는 더 즐겁게, 세 번째는 더 더 더 즐겁게, 나머지 두 가지는 인사하는 것과 예의를 지키고 배려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둥그렇게 모여 앉아 아이들과 선생님이 오늘 수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에 이어질 수업에 대한 고민들을 서로 공유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통해 아이들의 주도성을 키워주면서 누구에 의해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 합창부로서의 모습을 차근차근 갖춰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