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1일 오전10시 영암군청 2층 낭산실에서 영암군 농산물 가격 안정 기금 운용 심의위원회가 열렸다. 영암군농민회와 한농연 등 주요 농업관련단체의 대표자가 연초에 이취임식을 통해 새로운 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전직회장인 나는 사실 신임회장으로 심의위원을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주요 안건은 2024년 농산물 가격 안정 기금 운용 계획(안) 심의와 24년 농산물 가격 안정 기금 사업(안) 의견 청취였는데 나는 사업(안)에 대한 농식품유통과 담당팀장의 설명을 듣고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23년 7월 27일 개정된 조례에 따라 그간 조성된 기금 56억여 원의 이자수익 3억 원을 내년 시범사업을 통해 사용하려고 한다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지원대상과 지원품목을 선정하는데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담당부서인 농식품유통과의 사업(안)은 3억 원 전액을 품목은 무화과와 대봉으로 하고, 지원대상은 공동선별회(공선회)를 통해 계통출하하고 있는 해당 지역농협에 몰아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다시 풀이하면 무화과 공선회와 선별장을 운영하고 있는 삼호농협 서영암농협과 대봉감을 계통출하하고 있는 금정농협 3곳에 3억 원 전액을 지원하겠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그 자리에는 서영암농협 김원식 조합장과 영암낭주농협 이재면 조합장, 신북농협 이기우 조합장이 함께 있었다. 영암에서 생산되는 멜론은 현재 전국 최고의 품위를 자랑하며 수출길까지 열어놓았고, 신북의 배 또한 맛과 품질면에서 나주 못지않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재면 이기우 조합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앉아 있었을까 몹시 궁금하다.

2019년 4월 11일 제정된 영암군 농산물 가격 안정 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에 따르면 이 기금은 영암군에서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확대와 수급조절을 통한 농산물 가격안정과 유통활성화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23년 7월 27일 개정된 조례에는 2026년까지 150억 원 이상을 목표로 연차적으로 조성하게 되어 있고, 군수는 군의 출연금을 예산의 범위 내에서 의무적으로 본예산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남은 3년 동안 매년 30억 원 이상씩을 조성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문제는 지원대상과 품목을 어떻게 선정하는가이다. 특히 누구에게 이 돈을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지원대상자 선정문제가 관건이다. 해당 조례에는 지원대상을 영암관내에 주소를 두고 실제 경작하는 농업경영체로서 농업협동조합 및 생산자단체(영농조합법인 및 농업회사법인)를 통해 계통출하 하고 있는 농가로 규정하고 있다.

제2금융권으로써 지역농협이 협동조합의 본래 취지를 상실한 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다. 각종 농자재시장을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1금융권과 비교해서 턱없이 높은 대출이자에 하나로마트를 통해 골목 슈퍼마켓을 모조리 내쫓았으며 그것도 모자라서 식당에 장례식장까지 돈만 된다면 거의 모든 사업영역에 진출해서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고 있는 것이 현재 지역농협의 실태이다. 국가 차원에서 재벌이 문어발식 경영을 통해 나라 전체의 경제적 이익을 좀먹고 있는 것과 읍면단위에서 지역농협이 돈을 쫓아서 벌이고 있는 경영형태가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군민의 혈세로 조성되고 있는 영암군 농산물 가격 안정 기금 시범사업마저 지역농협에 몰빵해준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것은 필연코 사회적 약자들인 농민들에게 도전의 기회마저 박탈할 것이며 차별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하도 기가 차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주변 공무원에게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으며 이것이 과연 사업(안)이라고 할 수나 있느냐고 하소연을 했더니 “농협에 일을 더 시키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얼음이 되어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직 최종 결정은 되지 않았다.

이제 공은 우승희 군수에게 넘어가 있다.

이 사안과 관련하여 우승희 군수의 판단이 가난이 조작되고 있는 현실을 더욱 심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군민의 혈세인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여 사회적 재분배를 실현할 것인지 끝까지 지켜보고 싶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