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1일에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3년의 유예기간을 두었다. 소규모 사업장은 상대적으로 안전 관리 전문 인력 확보와 관련 비용 문제 등에 어려움이 큰 만큼 3년의 준비 기간을 더 부여해 내년 1월 27일부터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이정식 장관이 "현장과 전문가 의견을 들어 보니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을) 고민 중"이라고 밝히며 추가 유예 방침을 암시했다.

이는 국민의 힘 임이자 의원이 지난달 7일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시기를 2026년 1월 27일로 미루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뒤에 나온 정부의 반응이라 정부와 여당이 손발을 맞춘 느낌이다.

여기에 중소벤처기업부 이영 장관이 지난달 26일 중소기업계와 간담회에서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추가 유예 요구에 맞장구를 쳤으니 법 개악을 시도할 것이 분명해진 듯하다.

3년 유예기간 동안 뭘 하다가 이제 와 또다시 똑같은 이유로 유예를 하자는 것인가.

재해별 사고사망자 중 50인 미만 사업장 비중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81% 수준으로 동일했다.

지난해의 경우 연간 사고사망자 874명의 무려 81%인 707명이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였다.

올해 들어 2분기까지 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망사고 희생자 289명의 62%인 179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전체 사업장의 98%인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연기는 중대재해처벌법 전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영세하다는 이유로 수십년간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제에서도 제외되어왔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중대재해의 위험 속에 지속적으로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중대재해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영암군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대불공단과 삼호공단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올해 7월부터 8월 사이에만 대불공단에서 3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중 7월 3일에 대불공장에서 추락사 한 노동자는 그의 아버지 역시 미장공으로 일하다 고층에서 추락사한 것으로 알려져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했다.

이 노동자가 사망한 업체는 대불공단에서 가장 큰 업체로 수백명이 일하고 있으나 산재보험에 신고된 직원수가 50명보다 적어서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빠져 나갔다.

법 적용에서 빠져나간 이후에는 다시 속도전의 생산에 치우쳐 노동자의 안전이 뒤로 밀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조선업 중심의 무거운 중량물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대불공단과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일어나는 산업재해는 대부분이 중대재해이고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할 때가 많다.

중량물에 깔려 죽고 떨어져 죽고 지게차에 치여 죽는 등 허망한 일들이 우리 영암군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회사에서 당신이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현대삼호중공업에 내걸린 안전 구호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호가 이렇게 바뀐 것은 중대재해 발생시 사업주의 법적 책임을 명시한 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전과 후는 이렇게 달랐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내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하니 오히려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축소하거나 분할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정말로 후진적이다.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죽어도 된다는 말인가. 생명과 안전에 차별을 받아도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OECD 국가중 산재사망률 1위의 오명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연장의 시도를 당장 멈추고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는 법으로 개정하라!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