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배압의 승부수

초전에 물을 먹은 소배압은 개경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그러나 이를 포착한 부원수 강민첨이 평안남도 자주의 내구산까지 추격해 적을 크게 무찔렀다. 조원 또한 마탄에서 적병 1만 여 급을 참수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마탄은 지난 2차 침공 당시 서경을 방비하던 지채문이 거란군에게 패했던 전장이었는데 이번 승리로 앙갚음을 해준 셈이었다. 그럼에도 소배압은 고려의 요새를 피하며 신속히 개경으로 남하하였다. 20만이 넘는 고려군이 서북면에 집결해있다면 개경을 방비하는 수도방위군의 규모는 약소할 것이니 개경 직공의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해가 바뀌어 1019년(현종 10) 정월, 강감찬은 병마판관 김종현에게 1만 여 병력을 내주어 급히 개경으로 보냈으며, 또한 동북면병마사에게 3,300명을 주어 보냈다.(해당 병마사의 이름은 미상이다.) 신속한 기동을 요하는 만큼 두 사람의 추격병도 기병 위주였을 것이다.

9년 전과 다른 선택

소배압의 직공에 개경도 분주해졌다. 개경 사람들 머릿속에 9년 전 서울을 버리고 도망쳤던 악몽같은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을 것이다. 강감찬의 20만 대군은 멀리 서북면에 주둔하고 있었다. 관료·백성 할 것 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때처럼’ 떠나는 것이 낫다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때는 현종 또한 개경을 버리고 나주까지 도망쳤다.

그러나 9년이 지난 현종은 몽진이 아닌 개경에 남아 군민과 함께 항전할 것을 택했다. 공격목표가 자신임을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 적과 직면할 것을 선택한 것이다. 개경에 계엄령을 내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던 현종은 1월 3일(음) 소배압이 개경에서 불과 1백 리(약 40km) 떨어진 신은현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들을 성내로 들인 후 청야를 실시하여 들판을 비웠다.

국왕이 흔들림 없이 태산처럼 굳게 버텨주니 모두가 일치단결 한 걸까. 개경 함락이 쉽지 않겠다 판단한 소배압은 야율호덕을 개경 외성의 통덕문으로 보내 회군한다고 통보하면서 몰래 척후기병 300여 기를 금교역(황해북도 금천)으로 보냈다. 고려는 즉시 병사 100명을 보내 야습을 감행하여 이들을 참살하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