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과 다름없는 위험한 작전을 수행한 병사들의 전투력도 대단했지만 작전을 결정한 현종의 배짱도 두둑하기 그지없었다. 소배압은 끝내 결국 회군을 단행한다. 만 27세 군주 현종이 베테랑 장수 소배압을 격퇴하는 순간이었다. 강감찬의 충심과 재주를 믿고 20만 대군을 맡긴 것도 대단했지만,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고 나라의 서울이 또 한 번 불타는 참사를 막아낸 현종의 결정은 이번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또한 한 명의 선택이 역사의 향방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였다. 재위기간 내내 역경에 시달렸던 현종은 어느새 국난에 대처하는 강인한 군주로 성장해 있었다.

독 안에 든 소배압

‘전략목표를 포기하고 회군하는 침략군을 국경을 넘기 전에 격멸한다.’ 이것은 을지문덕의 살수대첩(612년)과 양규·김숙흥·정성 등의 타격작전(1011년)으로 구현된 바 있다. 소배압은 졸지에 이전의 희생자들과 같은 꼴이 될 위기에 놓였다. 1019년(현종 10) 1월 23일(음) 연주(평안북도 개천)와 위주(평안북도 영변)에서 강감찬이 적병 500여 급을 참하였다. 한편 소배압을 추격하며 개경으로 달려오던 김종현은 말머리를 다시 평안도로 돌려 달려오고 있었다.

배수의 진

퇴각을 계속하던 거란군은 어느덧 귀주(평안북도 구성)에 도착했다. 귀주성 동쪽에 위치한 거란군이 지나가는 순간 서쪽에서 강감찬의 본대가 나타났다. 하루만 늦었어도 거란군은 압록강에 도달했을 것이니 정말 아슬아슬하게 따라잡은 것이다. 고려군은 침략자들을 곱게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짐승의 나라’라 불렀던 거란에 대한 멸시와 복수심도 있었지만 재침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적을 죽여야 했다. 거란군 또한 결전을 각오하고 있었다. 딱 한 번만 이기면 무사귀환 할 수 있었다. 양군의 병력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두 달 간 거란군 숫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며, 고려 역시 서북면 곳곳에 주둔한 20만 대군 중 얼마가 귀주에 집결했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것이 이번 전쟁의 마지막 전투란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천 여 년 전인 1019년(현종 10) 음력 2월 초하루의 일이었다.

당시 양군의 포진은 거란군이 유리했다. 거란군은 귀주성 동쪽의 구릉에 자리했는데 서쪽에 있는 고려군이 거기에 도달하려면 두 개의 강을 건너 구릉 위로 올라가야 했다. 전투에 앞서 소배압이 회의를 열자 장수들이 언덕에 진을 쳐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도감으로 따라온 야율팔가가 홀로 반대했다. 그는 고려군이 도강하여 배수의 진을 치고 공격할 시 결사적으로 싸울 것이라며 양군이 두 개의 강 사이에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배압은 이를 따라 언덕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왔고 강감찬 역시 도강하였다. 북쪽에는 거란군, 남쪽에는 고려군이 포진하였는데 똑같이 배수의 진을 치고 마주한 형국이 되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