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전 4.19’는 같은 해의 3.15 부정선거에서 비롯되었다. 1960년 3월 15일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 선거는 온갖 형태의 부정선거로 얼룩졌다. 당시 민생고와 부정부패로 인해 민심을 잃은 자유당 정권은 ‘관권선거’를 노골적으로 자행하였던 것이다. 정치 폭력배들을 동원한 공개투표와 개표 조작, 무더기 위조 투표지 투입, 경찰과 교사, 지역 유지들을 동원한 이른바 준봉(遵奉)투표 등이 그 대표적 사례였다. 심지어, 각 마을에 나가 자유당 후보 선거운동을 하라는 부당한 지시를 견디다 못한 한 초등학교 교사는 지역 교육감에게 보낸 서한에서, “아무리 生覺하여도 敎師라는 職責 하에서, 아니 敎師라는 職責 與否를 不問하고 現 社會에 生을 享有하는 文化人이라는 見地에서 本意 아닌 行爲를 强要하는 今番의 選擧指導라는 事業을 저는 堪當할 수 없으므로 이 事業에서 離脫하겠습니다”고 당시의 심경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여러 형태의 부정선거와 경찰 지휘부, 내무부에 의한 날조에 힘입어, 이승만은 총 투표수에서 당선에 필요한 3분의 1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표를 얻었다. 또 이기붕도 180만 표를 얻은 장면을 제치고 840만 표로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에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여론과 시위가 전국적으로 전개되었고, 급기야 눈에 최루탄을 맞아 만신창이가 된 채로 마산 해변가에 버려진 16세 한 소년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 사건이 4월 한 달을 온통 부정선거 규탄과 이승만 하야로 이어지게 한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4.19는 미완의 혁명이었다. 이승만 하야 후 뒤를 이은 허정 내각의 중요한 과제는 선거부정 행위의 주요 음모자와 이승만 밑에서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행동을 자행한 자들에 대한 처벌이었음에도, 기존의 정치적·이념적·법적 기본 구조를 파괴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처벌을 단행하지 못하였다. 그 뒤를 이은 장면 정부 역시 과도 정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결국 부정선거 중죄인들과 부정축재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 또한 부정선거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1971년 치러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김대중 후보는 박정희 후보에게 95만 표 차로 패배했다. 그러나 당시 벌어진 선거부정을 빗대어 “김대중은 선거에서 이기고 투표에서 졌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이 선거에서 화들짝 놀란 박정희 정권은 급기야 ‘유신헌법’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하여 국민들의 참정권과 직접 선거권을 박탈하였고, 이로 인해 결국 정권 몰락의 길을 걸었다. 최근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익히 알려졌듯이, 12.12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 역시 ‘체육관 선거’로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자 했으나 ‘6.10항쟁’으로 명명되는 민주시민들의 끈질긴 참정권 투쟁에 힘입어 마침내 밀실에서의 선거공작이 좌절되고 지금의 직접 선거제도가 정착되었던 것이다.

며칠 전 22대 총선이 끝났다. 지역구 254석과 비례대표 46석 등 총 300석을 뽑는 선거에서 여당은 3분의 1석을 겨우 웃도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말았다. 여당의 선거 참패 원인으로 윤석열 정부의 독단적인 정국 운영과 실정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과연 공정한 선거제도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3.15 부정선거에 분연히 맞서 일어난 4월의 함성, 그 도도한 정신이 꽃을 피운 1987년 6.10 항쟁이 아니었다면 이렇게라도 민의를 충실히 대변할 수 있었겠는가 곱씹어볼 일이다. 그러나 4.19는 여전히 미완의 혁명이다. 1960년 당시 민주당 지도층에서는 자기들이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시위 대중 사이에서 그들의 지도력은 보이지 않았고,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었음에도 민주적인 선거문화와 제도의 기틀을 다지지도 못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크건 작건, 매 선거 때마다 회자되는 부정선거와 개표부정 논란이 여전히 우리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4.19는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