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세조의 치세는 그리 길지 않았다. 조선 국왕의 평균 재위 기간은 19.2년이다. 조선왕조는 519년 동안 27명의 국왕이 있었다. 혹자는 세조가 ‘문제적 군주’이기는 해도 치적을 많이 남겼다는 점을 높이 사지만 나는 그렇게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조가 이룩한 몇몇 치적들, 이를 테면 <경국대전> 등의 편찬사업과 각종 제도 정비, 그리고 국방의 강화 등은 사실 이전 태종과 세종의 것을 이어 받아 변용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조의 치적을 높이 치는 것은 역사의 인과적 맥락을 보지 못한 비역사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세조가 재위 기간에 가장 집착한 것은 왕권의 강화였다. 이것은 태종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태종의 왕권 강화는 공적인 가치를 위한 것인 반면 세조의 왕권 강화는 반대자를 무력화시키려는 사적인 권력욕 때문이었다.
그토록 왕권 강화에 집착한 세조이지만 기실 그가 이룩한 것은 왕권 강화라기보다는 공신들과 결탁한 ‘왕권 카르텔’에 불과했다. 당연히 그의 주변에는 현명한 재상보다는 교활한 책사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것은 먼 후대에까지 심각한 부작용을 남겼다.
세조는 <석보상절>을 집필하는 등 문학적 교양도 상당하고 절대음감을 타고나는 등 음악적 재능도 출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선대의 태종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태종은 성리학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반면 세조는 성리학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 나는 바로 이 점이 태종의 성공과 세조의 실패를 가른 요체였다고 본다.
세조는 경연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선대의 태종, 세종과 같은 성리학적 교양을 축적하지 못했다는 방증이 된다. 그는 성리학 대신 불교와 도교 그리고 잡학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세조가 비판자 또는 반대자에게 구사한 언행을 보면 그는 애초부터 민본 애민의 성리학적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조는 성리학 원로들로 구성된 의정부를 무력화시켰다. 그는 모든 국무를 6조가 먼저 의정부에 보고해 왔던 체제를, 형조에서 처리하는 사형 건을제외하고 전부 국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체제로 바꾸었다. 이른바 육조직계제였다. 이에 예조참판 하위지가 반대를 표명하자 세조는 그에게 즉각 관을 벗으라고 하면서 험한 언어로 질책한다.
세조실록 세조 1년(1445) 8월 9일 자, 세조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총재(정승)에게 위임한다는 것은 임금이 훙(薨)하였을 때의 제도이다. 너는 내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느냐? 또 내가 아직 어려서 서무(庶務)를 재결(裁決)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끝내 대권(大權)을 아랫사람에게로 옮겨 보겠다는 말이냐?"
이 정도면 무논리의 폭언이다. ‘정승에게 위임한다는 것은 임금이 죽었을 때의 제도’라는 세조의 말은 논리적으로 ‘자의적 재정의의 오류’에 해당한다.(<진보적 글쓰기> 237쪽) 하지만 세조는 이에 그치지 않고 하위지의 곤장을 치게 하고 하옥까지 시켰다.
이로부터 6년 후 세조는 <경국대전>에서 ‘사형은 의정부에 먼저 보고한다’는 규정까지 삭제하려고 했다. 이에 의정부가 반대하자 세조는, ‘어찌 모든 임금은 어리석고 모든 재상은 현명하겠는가? 의정부의 의견대로 하면 장차 권력이 옮겨가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고 말한다.
세조의 이 발언은 흑백논리의 오류이자 권력을 결코 나누지 않으려는 방어본능을 드러낸다. 나는 지나친 방어본능은 콤플렉스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일수록 권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형식적인 세리모니에 집착한다.
세조는 지금까지 왕에게 두 번 절해오던 것을 네 번으로 바꾸었다. 그는 어전에서는 절대 국왕을 등지지 못하게 하고 어명으로 부르면 전보다 두 배 속도로 빨리 달려오라고 했다. 또한 어가가 지나갈 때 칼을 찬 사람을 모두 꿇어앉혔다. 그는 자기가 행차를 나갔다가 환궁할 때 대장은 숙직하는 군사를 거느리고 광화문 안의 좌우 뜰에 줄지어 어가를 맞이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