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내가 역사 에세이를 집필하는 목적 중에는 ‘인물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들어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에는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있다. 그런데 과대건 과소건 역사의 왜곡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것이다. 게다가 후대인이 역사적 인물을 왜곡해서 평가하는 것에는 정치적 목적, 정확히 말해서 이기적인 목적이 개입된다는 점에서 위험한 일이다.
훼예포폄(毁譽褒貶, 헐 훼, 기릴 예, 기릴 포, 깎아내릴 폄)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칭찬은 편하게 받아들이고 폄하는 불편하게 여긴다. 이것은 본인에게는 물론 제3자에 대한 칭찬과 폄하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만약 특정인에 대한 칭찬이 그 특정인과 대립적인 인물을 깎아내리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심지어 특정인에 대한 칭찬은 그보다 더 우월한 인물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묘히 악용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폄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정인에 대한 폄하가 그와 대립되는 인물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폄하나 칭찬이나 합리적이지 않을 경우 둘 다 똑같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광대평가건 과소평가건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역사를 읽는 데 과유불급(過猶不及)처럼 긴요한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나침이나 모자람이나 똑같이 나쁘다는 것은 진리에 근접하는 말이다.
문제는 ‘칭찬은 폄하보다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 때문에 빚어진다. 다시 말해서 비판적 대상이었던 인물을 되살려 긍정적으로 부각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일면 정의로운 행위로 비친다.
그러나 한 번 칭찬의 대상이 된 인물을 제자리에 되돌리기는 아주 어렵다. 왜냐 하면 칭찬의 대상이 된 인물에게는 이미 마니아 또는 ‘빠’ 집단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그를 위인으로 부각시켜 실리를 취하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나는 예전에 ‘도산 안창호는 그리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내 글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나를 비틀린 사람으로 보거나 무례한 사람이라고 간주했다. 그들은 나에게 왜 좋은 것을 키우기는커녕 그나마 있는 것마저 깎아 내리지 못해 안달이냐고 힐난했다.
흔히 우리는 조선 역사에서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을 말하고는 한다. 여기에서 훈구란 나라에 공을 세운 권신들을 쯧하고 사림이란 세력화된 재야 선비들을 뜻한다. 조선의 공신에는 개국(開國), 정사(定社), 좌명(佐命) 세 가지가 있었다.
개국은 말 그대로 조선 건국에 공헌한 것이고, 정사는 사직을 안정시켰다는 뜻으로 권력 획득의 거사에 참여한 것이고, 좌명은 천명을 도왔다는 뜻으로 새로이 권력을 획득한 수장이 왕이 되는 데 협조한 것이다.
이러한 공신들을 가장 많이 만든 국왕이 세조였다. 세조는 정난공신, 정공신, 원종공신, 적개공신, 익대공신 등의 이름으로 엄청난 규모의 공신 훈작과 포상을 남발했다. 사실 이것은 왕권의 취약성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들은 많은 토지와 노비를 하사 받았다.
결국 훈구파가 중앙의 대지주 출신으로 의정부와 육조 중심의 구세력이라면, 사림은 영남과 기호지방의 중소지주 출신으로 삼사를 매개로 중앙 조정에 진출한 신진세력을 이른다.
연산군 이후 거듭된 사화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이 정치적으로 폭발하여 훈구파가 사림파를 축출하고 국정의 주인이 된 사건들이라는 식으로 거의 모든 사학자들의 관점이 일치한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를 거시적으로 통찰하지 않았다는 허점이 있다. 따라서 실증성과 논리성에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흔히 조선 성리학의 학통은 정몽주에서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과 정여창, 조광조로 이어지는 학맥으로 공식화된다.
특히 이 중에서 김종직에 대해서는 사림파의 영수로 자리매김한다. 그가 영남 사림파의 중심 역할을 한 것으로 인식된 데에는 그의 아버지가 김숙자였고, 김숙자는 길재의 학문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며,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등 영남 사림파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김종직의 문하에 몸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앞의 논의로 되돌아 가보자. 나는 김종직이야말로 과대평가된 인물이라고 판단한다. 그가 사림파의 영수라는 말도 가당치 않다. 아니 사림파라는 실체조차도 모호하다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
사실 사림파라는 용어는 근대역사학 성립 후에 비로소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병도(李丙燾)가 <국사대관, 國史大觀>에 조선 전기 문인·학자의 유파를 나누어 훈구파(勳舊派), 절의파(節義派), 사림파, 청담파(淸談派) 등으로 구분해 놓음으로써 사림파의 존재가 갑자기 돌출된 것이었다. 그리고 사림파는 조선 국정운영의 주체인 훈구파를 대비적으로 폄하하는 기능을 행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김종직을 사림파의 영수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 유명한 ‘조의제문’이 결정적 계가가 된 것 같다. 김종직은 그가 쓴 조의제문으로 인해 훗날 부관참시 되었다. 오늘날 조의제문은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한 글이라는 것으로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아마 이것은 세조, 성종대를 포함하여 25년 동안이나 관직에 몸담은 김종직으로서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날벼락 같은 사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의제문에 대한 논의는 다음 회로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