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2013년 국정원 부정선거를 수사하다가 수사팀에서 배제, 좌천된 윤석렬 검사는 국회 답변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이것은 충(忠)보다는 정(正)을 더 중시하는 정통성리학의 가치이념과 흡사한 발언이다.

충과 정이 일치되는 시대의 선비는 행복하다. 그러나 충과 정이 괴리를 빚을 때 선비들의 고뇌는 깊어진다. 이러한 때 충을 선택한 대표적인 선비로 우리는 정몽주를 기억하고 있다.(반면에 정을 선택한 대표적인 선비는 중종 때 조광조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논의할 예정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사라질) 줄이 있으랴.
- 정몽주 <단심가>, ( )는 필자

우리가 알듯이 이 시조는 이방원의 시조 <하여가>에 대한 답변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하여가에서 ‘하여(何如)’는 ‘어떠하리’의 뜻이고 단심가에서 ‘단심(丹心)’은 붉은 마음, 즉 충성심을 뜻한다. 정몽주는 이성계, 정도전 등의 개혁에는 적극 동참했지만 그들이 고려를 폐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는 혁명은 불온하다고 보아 반대한 것이다. 그는 이 반대의 의지를 단심으로 압축했으며, 그의 단심은 선죽교 바닥을 붉게 적시어 길이 남게 되었다.

정몽주의 스승 이색은 정몽주에 대해, “학문에서 어느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가장 뛰어났으며, 그의 논설은 어떤 말이든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칭찬하면서 그를 우리나라 성리학의 창시자로 평가했으며, 다섯 살 아래의 동문이었던 정도전도 “여러 생도가 각기 학업을 연수하여 사람마다 이견이 있었는데, 선생은 그 물음에 따라 명확히 설명하되 털끝만큼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라며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정몽주는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는 고려 말 들어온 신유학을 탁월하게 이해했고 이성계와 함께 왜구의 침략을 여러 차례 격퇴하는 무공을 세웠다. 또한 그는 명나라나 왜국과의 외교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한 유능한 외교가이기도 했다.

당시 고려의 왕은 공민왕 - 우왕·창왕 - 공양왕으로 이어져 왔다. 정몽주는 마지막 임금 공양왕의 폐위에 반대했다. 따라서 그가 단심가에서 말한 일편단심의 대상 ‘님’은 표면상으로는 공양왕을 가리킨다.

하지만 나는 정몽주의 일편단심을 공양왕이라는 특정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해석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정몽주는 이전의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우는 이른바 폐가입진 (廢假立眞, 가짜왕을 몰아내고 진짜왕을 세움)에는 찬성했기 때문이다. 정몽주는 그렇게 우직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공양왕으로 표상되는 고려왕업에 대한 충성심을 말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혁명가 정도전은 동문 정몽주에 앞서 스승인 이색과 결별했다. 이색이 정도전의 정적이 된 것은 토지개혁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색이 남긴 시조 한 수를 읽어보자.

백설이 잦아진(녹아 없어진) 골(골짜기)에 구름이 머흐레라(험하구나)/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가/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 이색 <회고가> ( ) 필자

여기서 구름은 혁명세력을, 매화는 고려의 권신을 의미한다.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여말 ‘삼은’으로 추송되는 야은 길재는 아예 고려를 태평성대라고 규정하는 회고가를 남겼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고려 말은 결코 태평성대라고 할 수 없었다. 세습귀족들과 지방호족들의 토지 탈취와 수조 착취로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왜구의 침탈에다 불교의 폐단이 적나라했다. 더욱이 원명 교체가 주는 국제정세의 불안감마저 겹쳐 있었다.
나는 정도전의 스승이기도 했던 이색이 자기의 부귀를 지키려고 토지개혁에 반대한 옹졸한 이기주의자였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는 혁명이 가져다 줄 ‘평화의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나는 정몽주가 자기의 권력 유지를 위해 혁명에 반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군주나 왕업에 대한 충성의 명분을 중시했다고 보아야 한다.

각도를 조금 달리 하고 볼 때, 이색이나 정몽주는 민본적 가치를 최상위에 두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바로 여기에서 그들은 삼봉 정도전과의 차이를 드러낸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낙마 사고를 틈타 혁명세력에 대한 전면적인 반격에 나섰다. 그 반격은 강도가 너무 커서 이성계와 정도전의 목숨까지를 위협할 정도였다.

여기에 이방원이 불쑥 개입한 것이다. 16세에 과거 문과에 급제한 이방원이 순발력과 권력투쟁의 천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제거한 것은 25세 때였고, 그는 정몽주처럼 55세까지 살다 죽었다. 정도전과 이방원에게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두 사람이 공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