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넌 그것을 잊어서는 안 돼.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하는거야.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이라는 ‘어린왕자’ 책속에 여우가 한말이다.
익숙해지고 길들어진 생활과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마주한다는 것은 설렘과 더불어 때론 두려운 마음과 불편함을 불러온다.
지난 4일, 누구보다 설렘과 두려움, 불편함을 인내하고 극복해야 했던 최민정(밀라벨,47)씨를 만나게 된 것은 그녀가 지난 달 31일 전국외국인가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목 상태가 좋지 않아 상을 받게 될지는 몰랐는데, 받게 돼 무척 기쁘다”며 수상소감을 표현한 최민정씨는 어느덧 결혼 20년차 한국인이 다 된 필리핀 이주여성이다.
1995년에 결혼을 했고 필리핀에서 학업을 마치고 2년 후에 한국에 온 최민정씨는 결혼 초에는 언어, 음식, 문화차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 시어머니께서 ‘무엇 좀 해라’라고 하시면 뭔지도 모르면서 ‘네,, 네’만 했다고 한다. 모든 일들을 눈치로 맞춰가며 해야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는 한국말 잘 하시네요?”라는 물음에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또 어렵고 힘든 일들이 없었냐고 물음에 “처음에 왔을 때 말도 안통하고, 어디 가고 싶어도 갈수도 없고, 아이를 가졌을 때는 필리핀 음식이 진짜 먹고 싶었는데 먹을 수가 없었다며 모든 면에서 불편하고 힘들었다”고 한다.
이주여성이라면 모두가 통과의례처럼 거치는 과정일 것이다. 이 힘들고 어려운 통과의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최민정씨가 다시 웃는다. 그리고 “참아야죠. 제가 의지할 데는 남편밖에 없었어요. 남편이 많이 도와줬지요. 남편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진짜 힘들었을거에요”
문득 생각해보니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부모님도 친척도, 친구도 없는 나라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남편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한국에 와서 좋은 점들은 뭐가 있어요?
사계절이라고 한다. 한국에 와서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만 봤던 눈을 처음 봤다고 한다. 그리고 시골에 살다보니 동네분들이 “밥 먹었어?”라며 관심 가져주고 음식도 나눠주기도 하는 문화가 좋다고 한다.
지금은 영암지역자활센터에서 영어강사로 활동하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현재 삶에 만족한다고 한다.

최민정씨를 비롯한 모든 이주여성들은 익숙해진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만나고, 다시 그 새로운 삶에 익숙해져 간다.
언어·관념·신앙·관습·규범·제도·기술·예술을 비롯한 이에 따른 인생관, 가치관, 행동양식이 다른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 있어 이주여성들은 인내하고 감내하며 한국사회를 적응해 가고 있다.
‘남편밖에 없었어요’라는 최민정씨의 말에서 한국사회에 적응해 가는데 남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단순히 아내가 한국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조력하는 것을 넘어, 남편 역시 이주여성이 살아온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된다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주여성과의 결혼은 타국의 여성과 결혼을 뛰어넘어 타국의 문화와의 만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