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성남시 민예총에서 주최하는 제1기 시민문화대학으로부터 강의 요청을 받았다. 내가 맡은 강의 횟수는 4회인데, ‘조선의 인물 3인’을 선정해서 각 1강씩 3회에다 역사기행 강의 1회이다. 518년의 장구한 조선 역사에서 단 3인을 선택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눈 감지 않고 생각해도 최소 15~20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내가 정도전과 조광조와 전봉준을 선택한 것은 나의 주관이다. 아울러 1일 기행지는 정도전의 위패를 모신 경기 평택의 정도전사당과 조광조의 묘역이 있는 경기 용인의 심곡서원으로 정했다. 그런데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오래 전부터 마음먹어 오던 일을 하나 벌이기로 했다. 조선역사 에세이를 집필하여 공유하는 것이다. 에세이는 앞으로 100회 정도로 연재할 작정이다.
오늘의 우리는 수구세력의 역사왜곡에 분개한다. 그런데 우리가 주로 예민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시대는 일제강점기에서 분단으로 이어진 이른바 근·현대이다. 다음으로는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근·현대사나 고대사보다 조선역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무지하고 편파적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식민사관의 핵심은 조선역사의 왜곡에 있다고 말한다. 이치는 간단하다. 조선을 폄하해야 제국주의 침략을 합리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선에 대해 터무니없이 자학적인 역사인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색해 볼 때가 되었다. 이것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똑같이 긴요한 일이다. 그 중 가장 단순한 편견은 제국주의 침략에 조선이 못나서 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이 근대화를 하지 못해서 망했다는 것과 비슷한 편견이다. 길게 말할 것 없이 당대 제국주의 침략에 망하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거대한 제국이었던 중국도 영토의 3분지 2 이상을 침탈당하지 않았던가?
조선의 역사를 이끌어온 핵심은 성리학이었다. 그런데 성리학은 우리가 단지 극복해야 할 봉건적 사유인가? 또한 조선의 이념은 사대주의, 농본주의, 숭유억불 정도뿐일까? 우리는 무슨 이유인지 조선 성리학 이념의 핵심이 ‘민본과 주체’였다는 사실을 별로 알려 하지 않았다.
삼봉 정도전(1342~1398), 정암 조광조(1482~1519), 해몽 전봉준(1855~1895) 세 분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셋은 모두 민본과 주체를 최고 가치로 내세운 혁명개혁가였다. 정도전은 조선혁명을 주도하면서 조선을 만들었다. 조광조의 첨예한 정신은 이후 임진 병자 양란의 소용돌이에서도 조선을 지키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전봉준은 다 망한 조선을 살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안적 인물이었다.
세 분 모두 타살되었다. 셋은 각각 56세, 37세, 40세를 살았다. 첫 강의에서는 정도전과 함께 이성계와 이방원을 논의할 것이다. 정도전은 물론이려니와 이성계나 이방원도 얼마나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는지도 말할 것이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정도전을 가장 적대시한 사람은 노론 영수 송시열이었다. 이성계를 제외한 조선의 왕 중에서 정도전에게 가장 호감을 표시한 이는 영조와 정조였다. 정도전을 칭송함과 동시에 그의 한계와 결함을 함께 말한 두 사람은 퇴계와 율곡이었다.
퇴율 두 분은 전형적인 성공인이다. 나는 결함 없는 범용보다 결함 있는 천재1)를 더 좋아한다. 정도전, 조광조, 전봉준 셋은 모두 당대에서 실패했다. 나는 성공한 범재보다 실패한 천재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주관적으로 세 분을 선택한 것이다.
끝으로 생트 뵈브가 한 말을 추가한다. “나에게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려 준다면, 나는 곧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할 수 있다.” 2) 이것은 순서를 바꾸어 그 사람이 누구를 존경하는지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과 같다.
1)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 있는 문장
2) 생트 뵈브의 비평논문, 「나의 방법론을 말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