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암우리신문 발행인 박 웅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단련된 실력, 그런 삶의 현실을 견뎌 낼 수 있는 단련된 실력, 그것을 내적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는 단련된 실력이다. 이것이 나의 신념이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몇 번이고 되풀이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고 모든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특혜의혹인가 공익성(公益性) 실현을 위한 눈물겨운 몸부림인가?
필자는 기찬장터 운영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논란을 취재하면서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 결론 부분에 써져 있는 위의 경구(警句)가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항간에 영암로컬푸드사회적협동조합을 사업자로 선정하기 위한 특혜(特惠)라는 의혹(疑惑)이 불거져 L 이사장을 교체하기 위한 임시총회가 열리기도 하였고, 영암농협이 왜 갑자기 민간위탁 모집공고에 응찰(應札)했을까 새로운 궁금증이 촉발(觸發)되기도 하였다.
영암로컬푸드사회적협동조합이 사업자로 선정되면 특혜이고 영암농협이 사업자로 선정되면 특혜가 아닌 것인가? 한 마디로 웃기는 논리이다. 공적자금이 20억 원 이상 들어간 기찬장터의 운영권 선정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법인이나 생산자단체가 선정되더라도 필연코 특혜시비를 불러올 가능성은 내재(內在)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특혜라고 시비(是非)할만한 사안일까?
국어사전에 ‘특혜’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특별히 베푸는 혜택’이라고 써져 있다. 사람들은 기찬장터가 수익을 내기도 어려운 구조이고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고생만 죽어라고 한다며 타박하면서도 왜 ‘특혜’라고 착각(錯覺)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우리사회의 부정적인 이면(裏面)이 숨겨져 있다. 민선 4·5기 시절 자료 한 장 남기지 않은 실제 운영이 그러하였고, 고생은 하더라도 행정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동참하게 되면 다른 분야에서 혜택을 누려온 것이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自畵像)이기 때문이다.

영암군 농·특산물 판매센터 설치 및 운영조례 제1조(목적)를 보면 “이 조례는 영암군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의 판매를 촉진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직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군에서 설치한 영암군 농·특산물 판매센터의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읽고 또 읽어 보아도 이윤추구의 논리가 아닌 공익성 실현에 그 무게중심이 두어져 있다.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수 십 억 원을 들여 설치한 시설물의 운영사업자를 선정하는 문제이니 만큼 사회적 약자인 영세소농과 고령농민들의 소득보장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법인이나 생산자단체가 선정될 수 있도록 심사기준도 바꾸고 추가적인 지원 대책도 마련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난 11일 영암군민회관에서 열린 영암로컬푸드사회적협동조합 임시총회장에서 그간 헌신적으로 일해 온 L 이사장이 사임을 하고 새로운 이사장을 선출해야 한다고 안건이 상정되었을 때 거의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실무진으로 열심히 일해 온 한 여성 조합원은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잇지 못했고 생산자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그을린 낯빛의 남성회원은 손끝을 떨어가며 겨우겨우 정치적 외압에 굴복하지 말고 조합을 지켜내자고 호소하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삼켰다. 정녕 우리들은 진심이 통하는 상식적인 세상에서 살 수는 없단 말인가!

절차를 무시한 집행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좋지만 의회와 의원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했으면…
영암군의회의 몇몇 의원들이 영암로컬푸드사회적협동조합을 사업자로 선정하는 문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거나 영암농협이 사업자로 선정되도록 은근히 밀어준다는 등의 소문은 취재 결과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결정된 것처럼 의원들에게 통보한다거나 절차를 무시하고 일을 강행하려 드는 집행부의 잘못된 사업 행태(行態)에 대해 지적을 한 것 일뿐 민감한 사안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대처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취재과정에서 K 의원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영암군의회가 제정해 놓은 몇몇 조례들이 상위 법령과 상충되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서 지금 당장은 어찌할 수 없는 사안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다시 막스 베버의 글을 인용하자면 정치인은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dennoch!)’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召命)’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찬장터의 운영 주체로 지역농협이 적합한가?
필자는 두 가지 이유에서 기찬장터의 운영사업자로 현재의 지역농협이 선정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농협이 ‘협동체’와 ‘경영체’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애초부터 관변조직의 성격으로 출발한 한국의 농협들이 ‘협동체’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이윤추구를 위한 ‘경영체’로서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현실이다.

기찬장터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생산자를 조직하여 경쟁력 있는 상품을 연중 상시적으로 공급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현재 350여 종에 이르는 농·특산물이나 1차 가공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최소 1,000여 농가 이상의 생산자를 조직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경영체’이면서 사업 대상과 범위를 몇 개 읍면으로 한정하고 있는 지역농협이 과연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또한, 영암군 농·특산물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고 11개 읍면 전체 농가들의 소득향상에 기여하는 공익적 기능을 지역농협이 헌신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 필시 다른 지역농협들과 연계하여 해결할 수 있다거나 작목회나 공동선별출하회(공선회)를 활용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큰 착각이다. 필자가 기찬장터의 운영 주체로 지역농협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둘째, 기찬장터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생산자인 농민들의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소비자인 도시 주부들의 처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였을 때 최저생산비가 보장되는 범위 안에서 손해를 보고도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운영해야만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을 때도 도시의 소비자들이 우리 영암 농·특산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익성이 아닌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현재의 지역농협이 이런 역할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지역농협이 이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기찬장터 운영사업자 선정 과정에 뒤늦게 응찰했을까?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 2012년 협동조합설립에 관한 기본법이 새로 제정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의 지역농협들은 거의 대부분 신용사업에 의존해 유지해 왔는데 저금리 시대가 지속되고 농촌경제가 위축되면서 당연히 신용사업은 한계지점에 도달해 있다. 새로운 출로라고 해봐야 경제사업을 활성화하는 문제인데 경제사업은 생물(生物)을 취급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손실율도 크고 고정자산 취득에 대한 투자도 만만치 않다. 품질관리나 유통전문가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간 읍면 단위에서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해 왔던 사업 분야들을 새로이 생기고 있는 협동조합들에게 내주어서는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들이 성공하면 기존에 자신들이 누려왔던 독점적인 지위를 내줄 수 있기 때문에 마냥 축하해 줄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대안은 있는가?
필자는 이웃 시군인 나주의 사례를 벤치마킹(benchmarking)할 것을 권하고 싶다.
기찬장터 운영사업자 선정 문제가 로컬푸드사업 활성화 문제와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주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 우리 영암과의 차별성(差別性)이 분명해 진다.
나주시는 로컬푸드사업의 성지(聖地)라 불리는 완주의 사례를 나주시의 처지와 조건에 맞게 창조적으로 벤치마킹한 사례라 볼 수 있다. 4인의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여 행정조직 외부에 ‘로컬푸드 통합 지원센터’를 만들고 행정조직 안인 농식품유통지원과에 ‘로컬푸드팀’을 별도로 설치하여 인적 재정적 지원을 아낌없이 하고 있다. 나주시의회에서는 ‘로컬푸드 지원 육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여 발 빠르게 법률적 뒷받침을 하였다. 농업관련단체를 비롯한 시민 사회단체들에서는 ‘자치와 협동’이라는 주제로 여론을 수렴하는 것은 물론 로컬푸드사업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하였다.

우리 영암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어디 하나 박자가 맞는 구석이 없다. 기찬장터 운영사업자 선정 문제나 로컬푸드사업 담당자라고 해봐야 친환경농업과 내에 마케팅팀에서 다른 사업과 함께 포괄적으로 업무를 관여하는 것이 전부이고, 의회와 집행부는 ‘견제와 감시’라는 이름으로 힘겨루기에 여념이 없지 않은가? 시민 사회단체의 숫자나 전문적 역량은 취약하고, 기찬장터 운영사업자 선정 문제와 관련하여 입장을 발표하는 농업관련단체 하나 없는 것이 우리 영암의 뼈아픈 현실이다.

나주시에서는 위와 같은 과도적 단계를 거치고 나면 합리적인 절차와 방식으로 그간 생산자조직에서 검증된 사람들을 주축으로 해 별도의 법인을 설립하여 독립시킬 계획이란다. 완주와 같은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70억 원 정도의 재정적 지원과 3~4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니 과도적 단계로써 시군이 직접 책임지고 지원하는 인적지원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만사(萬事)가 뒤틀리는 법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만사(萬事)가 뒤틀리는 법이다.
아무리 현실에서는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지만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것을 간절히 권하고 싶다. 후세들에게 법과 원칙,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8월 12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분신 항거하신 영암 영보 출신 독립운동가 후손 최현열 선생의 쾌유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