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최부의 <표해록>은 당을 방문한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기>, 원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더불어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 꼽히는 빼어난 기행문학이다. 또한 통일신라 때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를 방문한 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함께 한국인이 넒은 세상을 체험하고 남긴 여행기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 (<민음조선총서> 01, 236쪽)
한국에서 가장 최근에 출간된 조선통사 <민음조선총서>에서는 최부의 <표해록>을 무려 10쪽에 걸쳐 화보를 곁들여 소개하고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학창시절에 배운 역사에 <표해록> 같은 책은 없었다. 그저 실학자들의 책 제목과 저자 이름만 똘똘 외웠던 기억이 있다.
단종 2년 전라도 나주 곡강에서 태어난 최부(崔溥, 1454~1504)는 24세에 진사 회시에 3등, 29세에 알성문과 을과에 1등으로 합격한다. 그는 <동국통감> 편찬에 주전으로 참여했고, 사헌부 감찰과 홍문관 부교리를 거친 후, 34세에 제주도 추쇄경차관(행정사법특별검사)에 낙점된다.
- 1487년 9월 17일 최부는 성종에게 하직 인사를 올린 다음 길을 떠나 전라도에 이른다. 그는 전라감사가 선발해 준 수행관리와 관노들을 거느리고 해남현에 도착하여 순풍을 기다렸다. 11월 11일 아침 최부는 새로 부임하는 제주목사 허회와 전라도 관두랑(지금의 해남)에서 배를 타고 970리의 바닷길을 건너 다음날 저녁 제주 조천관에 도착했다.
석 달 후인 이듬해 정월 삼십 일은 하늘이 몹시 어두웠다. 그동안 최부는 엄정하고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는 미시가 조금 지나 왠지 불길하게 느껴지는 전갈을 받는다. 애월포는 그가 석 달 전 배를 댔던 조천관이 있는 포구다. 말에서 내린 최부는 바다를 바라보며 포구의 언덕길을 걸어 내려갔다. 바람이 두터운 두루마기 자락을 부풀리고 있었다.
험악한 기상 탓인지 바다에는 고기잡이배가 한 척도 없었다. 최부가 조천관사 입구에 다다르기도 전에 한 중년 사내가 화급히 달려와 최부 앞에 납작 엎드렸다.
“나으리!”
“너는 막금이 아니냐?”
막금은 엎드린 몸을 조금 일으키더니 사각형으로 싸인 보따리 하나를 내밀었다.
“어서 이것을 입으십시오. 나리의 부친 진사 어른께서 돌아가셨습니다.” -
(이상 김갑수 졸작 장편 <오백년 동안의 표류> 22쪽에서 발췌)
<표해록>은 43명이 제주를 출발, 흑산도 근해에서 표류를 시작하여 동중국 연안에 표착한 조선 관리의 기록이다. 귀경 직후 작성된 이 기행문은 처음의 해중 표류, 중간의 외지 여행, 끝의 환국 노정으로 구성되어 탄탄하고도 완성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기행문에는 인간들의 모험이 있을 뿐 아니라 개인의 능력, 용기, 의지, 지식 등이 나타나 있으며 방대한 양의 명나라 견문이 포함되어 있다. 저자 최부는 표류라는 예기치 못했던 시련을 진기하고도 경탄할 만한 견문록을 만드는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최부는 동중국 해안에 표착 후 체포되어 호송길에 중국 동부 각지와 강남을 거쳐 북경에 이르렀다. 험난했던 그의 체험과 선비적 면모는 중국 관리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명나라 정부는 최부 일행에게 그들의 고국인 압록강까지 갈 수 있는 수송 수단을 제공했다.
이 견문록을 읽는 것은, 먼저 이 안에 담긴 사건 자체의 재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능력에 도움을 받아 독자가 지식을 넓히는 방편으로도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15세기 말 조선의 역사와 풍속뿐 아니라, 명나라의 그것들까지도 해박하게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귀국 후에 전개되는 역동적인 사건들은 그를 삼키려 한 동중국의 숙명적인 폭풍과 닮아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