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 박 웅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삶일까?”
작년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 과정에서 경찰의 물대포 진압에 의해 317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돌아가신 생명과 평화의 일꾼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을 동행 취재하면서 제일 먼저 뇌리를 스친 생각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현 시국의 현상적인 측면만을 생각해보면 Jtbc 손석희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본질적인 측면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국가폭력 피해자 고 백남기 농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한 노동자 농민 등 서민들의 지난한 투쟁과정이 그 기폭제가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백남기 농민의 살아온 과정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고 생각된다. 1947년 8월 24일 보성군 웅치면 부춘동(富春洞)에서 태어난 그는 63년에 광주 서중학교를 졸업하고 68년에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해 민주화운동으로 3차례의 제적과 2년여의 징역살이,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최초 직선제 총학생회 부회장,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장과 전국 부회장,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 등을 역임했으니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보성군수나 국회의원을 했어도 진즉 했음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경력사항 어디를 뒤져봐도 군의원 한 번 했다는 문구가 없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백남기 농민 그의 삶이 부나 권력, 명예를 좇아 살아온 과정이 아니라 돈과 권력으로부터 소외받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민중들 삶 속으로 깊숙이 투신한 발자취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11월 5일 보성장례식장에서 추모의 밤 행사를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부춘동 마을노제에 참여했다. 필자가 풍수지리를 잘 알거나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형의 이상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는 지세였다. 백남기 농민이 살았던 집은 마을의 맨 위쪽 대나무밭으로 둘러싸인 그 아래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었다. 부춘길 22-1번지. 그곳에 서서 주변 산세를 둘러보았다. 저절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길러지고도 남음이 있었다. 주인을 잃은 농기계와 각종 농자재들이 당신의 얼굴처럼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농사꾼이어서 그랬을까? 괜스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주황색 기와지붕, 윤기가 흐르는 툇마루, 50여개에 이르는 항아리들, 독야청청(獨也靑靑) 버티고 서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 그 아래 주인 잃은 흰색 개 한 마리가 낯선 이들을 향해 맹렬히 짖어대고 있었다.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듯한 친척 한 분이 “우리 남기가 새벽 두 세 시면 일어나 개밥을 주었는데 앞으론 어떻게 할꼬...”하며 혀끝을 찼다.
집을 뒤로 하고 그가 우리밀을 살리기 위해 직접 일궜다는 밀밭으로 향했다. 경사가 좀 심하긴 했지만 6,500여 평에 이르는 드넓은 개간지였다. 백남기 그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 식량주권 회복이라는 밀알을 심어왔던 것이다. 얼마 전에 보성군농민회 회원들이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공동으로 파종작업을 마쳤다고 했다. ‘백남기 열사여! 생명과 평화의 우리밀로 부활하소서!’ 이제는 그가 심어왔던 밀알과 함께 그의 영혼이 잠든 땅이 되었다.
6일 정오 12시에 광주 금남로 옛 도청 앞에서 광주전남 추모 노제가 예정되어 있었다. 필자는 20대 젊은 청춘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다. 80년 5월 마지막으로 도청을 사수했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선배였다. 윤상원 열사와 영혼결혼식을 한 노동자의 누이 박기순 열사의 묘 앞에서 밤을 새워 하늘의 별을 헤던 그 시절,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었다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얼마나 부르고 또 불렀던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기 보다는 거리의 최루탄 속에서 화염병을 던졌고, 전공서적을 펴들고 열공하기 보다는 광주시내 지리를 외우기 위해서 지도책에 머리를 쳐박고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나 전술이론서적에 더 심취했던 나의 20대. 민주화가 시대정신이었던 그 시절엔 필자의 경우가 조금 더 심했을 뿐, 이런 대학생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그런 시절이었다. 광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20대 청춘시절의 기억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고 백남기 농민을 지키기 위해 서울을 오르내리고 군청 앞 분향소를 지켰던 근래의 모습들이 겹쳐지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또 흘러 내렸다.

금남로!!
80년 5월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자행해 무고한 광주시민을 학살했던 그곳. 양쪽으로 도열한 듯한 깃발과 끝을 알 수 없는 시민들의 행렬이 백남기 농민의 운구행렬을 맞이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자의 죽음을 광주 시민들은 그렇게 맞이해 주었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광주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모든 것을 다 해버린다고... 결정적으로 백남기 농민의 둘째딸 백민주화씨가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무대에 등장했을 때 광주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그녀를 맞이해 주었는데 참을 수 없는 오열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추모행렬에서 20여년 만에 만난 한 후배가 ‘이카로스의 날개’라는 책을 내밀었다.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더 높이 오르고자 했던 이카로스는 결국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내려 에게해에 떨어져 죽었다. 백남기 농민과 이카로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을 상징하는 ‘이카로스의 날개’라는 책을 백남기 농민의 장례행렬에서 내가 받은 것은 어쩌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연결해 주는 통로가 바로 백남기 농민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묘한 생각에 빠져들게 했다.
광주전남 추모제를 마치고 금남로를 지나 옛 공영터미널 서방사거리 말바우시장 입구까지 광주 시민들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의 유해(遺骸)는 고인의 유언대로 영락공원에서 화장을 하여 옛 5·18묘역에 묻혔다.
백남기 농민, 그의 죽음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된 삶인지,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필자에게는 그 깊은 뜻을 헤아릴 만큼의 지혜가 없다. 그래서 보성장례식장에서 그를 추모하기 위해 대학시절 알고 지낸 한 친구가 추모곡으로 부른 ‘심장 속에 남는 사람’이라는 노래가사로 부족한 필자의 생각을 대신하고자 한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