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최부의 <표해록>은 당을 방문한 일본 19세기 이전에 중국을 여행한 비중국인이 남긴 기행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다. 13세기 중국에 온 마르코 폴로는 견문은 넓었으나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반해 중국 문화에 정통했던 조선의 지식인 최부는 해박한 역사, 지리, 문학에 관한 교양을 바탕으로 하여 <표해록>을 집필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풍부하고 날카롭게 중국을 기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표해록>의 영향력은 동방견문록에 비해 미미했다. 동양에 대한 정보에 메말라 있던 유럽인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동방견문록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들 중에는 동양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에 조선인의 경우는 달랐다. 조선인들은 중국의 물질문화보다는 정신세계에 더 관심이 높았다. 게다가 표해록이 한문본으로 간행되어 일부 지식인만 접할 수 있었다. 19세기에 한글 필사본이 나왔지만 그 시절 조선사회는 중국에 대한 관심이 식었을 뿐 아니라,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 마치 미덕인 양하는 이상한 풍조가 성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러나 표해록을 읽은 일본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원래 그들은 중국과 조선의 정세를 호시탐탐 엿보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조선인이 쓴 중국 기록에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놀랍게도 1769년에 유학자 청전군금이 표해록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여기에 약간의 논평을 달아 <당토행정기>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당토행정기는 얼마 후 <통속 표해록>으로 제목이 바뀌어 일본 전역에서 널리 읽혔다.
<낙엽>, <관부연락선>의 소설가 이병주는 자기가 표해록을 접한 것은 일역 판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덧붙이기를 한국인은 영국의 <로빈슨 크루소>는 잘 알고 있으면서 그에 비해 문학성과 기록성이 손색이 없는 표해록은 잘 모른다고 했다. 이것은 난센스라기보다는 심하게 유감스러운 일이다.
현대에 들어 이 표해록에 진지한 학구적 관심을 보인 사람은 민망하게도 미국인이었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 교수 존 메스킬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 표해록은 미국 명문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상재되었다.
존 메스킬은 1950년대 일본 유학생이었다. 그는 일본인 교수 미야자키에게 표해록을 소개받았다. 그 무렵 일본 경도대학의 마끼다 교수도 표해록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 고전을 연구하다가 표해록을 알게 된 이후 표해록 연구 전문가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에서는 1964년에야 처음으로 표해록 연구 논문이 나왔다. 그리고 그 해에 처음 한글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1979년 새로운 번역본이 또 출간되었다.
중국 북경대학 갈진가 교수는 표해록을 처음으로 중국에 소개한 학자다. 그는 최부와 최부의 표해록에 매료되었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함께 최부의 <표해록>을 세계 3대 중국기행문으로 자리매김한 사람이 바로 갈진가 교수이다. 그는 북경에서 열린 표해록 세미나에 참석한 한국인들을 향해 불가사의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고 한다. “왜 한국인은 최부를 잘 모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