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우리들 모두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대한민국 집회 역사상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낸 적은 없었다. 지난 12일 광화문광장에서 해방 후 사상 최대의 집회인 ‘2016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려 ‘박근혜 퇴진’이라는 외침이 서울 도심을 뒤흔들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건, 나락값 폭락, 노동법 개정안, 국정 교과서 등 세대·계층에 쌓여가던 현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인 ‘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기화로 폭발해 주최 측 추산 총 100만여명이라는 유래 없는 대규모 인파가 몰렸다.
이날 민중총궐기에는 민주노총, 영암군농민회, 민주연합노조, 쌀생산자협회 등 10여개의 단체 구성원과 지역민 포함, 총 5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번 집회 참가자 중에는 영암여자고등학교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아침 7시께 영암군 실내체육관 등에서 집결해 20여대의 버스로 서울에 상경하거나 개인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참석한 이들도 있었다. 세대, 지역, 계층 모든 것을 초월해 수많은 사람이 참가한 이번 집회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각양각색의 국민들이 모두 모였으며,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주도해 더욱 의미 있는 집회가 됐다.
이번 민중총궐기는 무엇보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빛을 발했다. 집회는 차분하면서도 즐거운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도심에 모인 대다수는 별다른 돌발행동 없이 평화시위를 이어갔다. 이번 집회 현장에서 쇠파이프, 경찰봉, 물대포는 보이지 않았으며 일부 시위 중 흥분한 참가자가 있을 때마다 주위 시민들이 앞장서 진정시키고 말리는 등, 끝까지 평화적인 집회를 이어갔다.
집회 참가자들은 ‘하야송’이 울려 퍼지는 도심에서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의 SNS글을 풍자한 ‘지지율도 실력이야’라는 피켓부터 ‘최순실 대통령을 구속하고 박근혜 부통령은 하야하라’라는 피켓까지 재치 있는 풍자와 비판으로 폭력을 대신했다. 집회에 참석한 영암주민들도 한손에는 촛불을 들고 광화문까지 거리행진을 하면서 평화적인 집회 문화에 동참했다.
집회가 끝난 후에도 시민들은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스스로 나서 거리를 청소하는 모습을 보이며 끝까지 질서를 잃지 않았다. 이날 촛불집회 공연에 참석한 연예인 김제동씨는 이런 참가자들의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고 ‘정치는 3류, 국민은 1류’라고 표현해 뜨거운 호응을 받기도 했다.
이번 집회는 전 세계 외신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일본의 아시히TV는 시위 현장을 생중계하기도 했으며, 영국BBC, 일본NHK, 미국CNN 등 전 세계의 언론사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국정능력의 상실, 집회의 규모,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 등을 조명하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영암여고 한 학생은 “학생이라고 해서 어른들에게만 정치를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 모여 평화로운 모습으로 행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의 의식수준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