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    박 웅

100만 명 이상이 모였다는 11월 12일 민중총궐기대회는 우리 국민들의 거대한 힘을 보여준 위대한 항쟁이었다. 몇 년 뒤에 역사책에 꼭 나온다는 사탕발림으로 필자 또한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의 손을 잡고 광화문 네거리에 함께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만들어온 항쟁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1960년 4·19의거가 그러하고, 1987년 6월 민주대항쟁이 그러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국민적 항쟁은 그 성격상 운동의 도덕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아픈 상처를 남겨왔다는 사실이다. ‘이게 나라냐?’며 의로운 항쟁에 분연히 떨쳐 일어선 국민들은 무너진 나라를 일으켜 세운 뒤에 초연히 떠난다. 항쟁의 그 다음날 책임 있게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치는 나의 소관업무가 아니라는 듯 다시 생업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만 교체되고 지배질서 내부의 정치적 역학관계만 바뀐 채 항쟁의 주역인 국민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이다. 국민들의 정의로운 촛불이 구조적인 사회변화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분노한 그 다음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노와 항쟁만으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데 그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백만 총궐기로 표출된 분노한 거리의 민심으로 보면 이미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국정공백이고 헌정질서 유린인 것이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에 최저인 5%라고 한다. 우리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잔량이 5%밖에 남지 않은 휴대폰 배터리는 당연히 교체하듯이 국민 지지도가 5%밖에 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교체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민중의 분노에 놀란 지배층이 스스로 권력을 포기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백만 촛불 민심을 무겁게 수용하여 박근혜가 스스로 하야할 수 있을까? 필자는 단연코 그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분노의 촛불을 들기 전에 그 다음날을 상상해야 한다.
분노한 그 다음날이 더 중요하듯이 지난 11월 12일 백만 촛불 정국 이후가 더 중요하다. 분노한 다음날에 대한 준비가 없으면 분노의 촛불이 사그라진 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자신들도 피해자인 척 국민들을 기만하는 재벌총수들과 논조를 180도 바꿔 촛불 민심에 합류 기생하려는 언론, 2선 후퇴니 거국내각이니 장외투쟁은 없다던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언제 그랬냐는 듯 민중총궐기의 맨 앞자리를 차고 앉아 마치 자신들이 모든 것을 이끌어온 양 행세하는 것처럼 기득권세력들은 권력분점의 떡고물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절대다수 국민들의 고단한 삶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떠먹여 줘도 못 먹는다.’, ‘대안이 없다.’는 등 정치허무주의와 무력감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게 될지도 모른다.
분노만으로는 안된다.
그래서 지난 11월 12일 백만 촛불항쟁 보다 지금 이후가 더 중요하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은 물러났지만 민주당 윤보선 정권에게 권력을 헌납하고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했듯이, 1987년 6월 민주대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는 쟁취했으나 노태우 군사정권이 들어서서 국민들의 삶을 짓밟았다. 그렇다면 2016년 11월 12일 백만 민중충궐기대회의 성과를 기존 정치세력에게 고스란히 헌납하고 고단한 국민들의 삶의 변화에 그들의 선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국민들의 정치·조직적 결실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분노한 그 다음날 우리들 앞에 제기된 숙제이다.
필자는 돈과 권력으로부터 소외받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노동자, 농민, 빈민 등 서민이 주인대접을 받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 미국과 일본을 위해 봉사하는 사대매국정권, 분단과 대결을 정권유지 수단으로 악용하는 극우보수세력, 권력자에게 아부 기생하여 설쳐대는 검찰과 언론, 국민적 요구 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잇속이 더 앞서는 기회주의적이고 무능한 야당, 재벌에게는 천국 서민들에겐 지옥인 세상, 이런 세상을 정의롭고 공정한 새세상으로 바꿔야 한다.
초등학생들도 존대를 하지 않고 무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
즉각 퇴진만이 정답이다. 현행법상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면 60일 이내에 다시 선거를 치루게 되어 있다. 조기 대선만이 국정공백 최소화의 지름길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국정공백이고 헌정질서 유린이다. 청와대에 갇혀 최순실의 꼭두각시가 된 그녀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거듭 촉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