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울분이 가득했던 과거를 모두 훌훌 털어버리자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후련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영암군서농공단지 내에 위치한 재활용사업단에서 만난 오병철(56)씨의 말이다.
오 씨는 영암군서농공단지 내에 위치한 재활용사업단에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해 오후 4시 30분까지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일을 한다.
비록 지금은 특별한 기술이 없는데다 몸 상태가 좋지 못한 까닭에 단순 재활용 분류 작업을 하는 것에 그치지만 항상 앞장서 성실하게 맡은 바 일을 해나가고 있다. 땀 흘려 일하는 그의 표정에는 시종일관 순박한 웃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오 씨는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노숙자였다. 지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노숙자로 살았던 오 씨의 삶은 그만큼 많은 풍파가 있어왔다. 영암읍 역리 출신으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비록 초등학교 중퇴라는 학력이 전부지만 항상 쉬지 않고 성실히 일을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주유소, 이발관, 서울에 위치한 봉제공장 등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 해왔으며 그 결과, 많은 재산을 모아 고향에 돌아와 집을 마련하는 등 노력의 결실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불의의 사건으로 그가 평생 모은 재산으로 마련한 집이 담보로 넘어가게 됐고 전직 경찰관이셨던 아버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삶에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당장 자신의 집이 한순간에 넘어가게 되자 오 씨는 당장 잘 곳도 없다는 막막함과 아버지를 잃은 충격에 무작정 고향을 떠났다. 숙식이 제공되는 일을 하며 의식주를 해결하고 다시 돈을 모아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성품이 순박하고 남의 말을 잘 믿는 성격을 가진 오 씨는 수없이 이용당하고 내팽개쳐지기 일쑤였다.
오 씨는 신안군 염전지역 외딴 섬에 갇혀 노예 같은 생활을 하기도 했고, 한 여성에게 이용당해 어렵사리 모아놓은 돈을 또다시 날리기도 했다.
또, 새우 잡이 어선 일을 하면서 한 직업소개소 소장의 농간에 의해 선주가 선불금 형식으로 지불한 임금을 착복 당하고 돈은 한 푼도 쥐어보지 못한 채 빚에 묶여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중노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결국 그는 오랜 기간 계속된 고초로 건강을 망쳤으며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고향에 돌아왔다. 50이 넘어버린 나이인데다 무일푼이었던 그는 결국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에 위치한 영암공설운동장에서 기약 없는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오 씨는 세상에 대한 실망만 남은 현실에 한때 쌓인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이제는 이판사판이라는 식으로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기도 했다.
오 씨는 “그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요. 밥도, 잠자리도 모든 것이 제게는 의미 없었고 그저 울분을 달래기 위해 술만 먹고 싶었습니다”며 울먹였다.
한때 삶을 포기했던 그는 조금이라도 돈이 생길 때마다 술을 마셨고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기도 했으며 4개월여의 노숙생활로 그의 건강은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 씨의 고향인 영암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선·후배 사이로 알고 지내던 지역민들은 그에게 잘 곳을 소개시켜주기도, 밥값을 보태주기도 했으며 군 기관과 영암지역자활센터 등에 알려 그가 노숙생활을 청산하게끔 애썼다.
오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군과 자활센터에서는 그가 지낼 수 있도록 원룸과 가재도구 등을 마련해줬으며 일정 생활비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또, 고향 선배인 재활용사업단의 김일두 단장은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고 형과 함께 일하러 가자”는 말로 그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으며 아직 마음을 완전히 다잡지 못했던 그가 술을 먹고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을 때 군의 한 복지담당자는 새벽같이 그를 쫓아 다니며 말리기도, 경찰 측과 피해자를 설득하기도 했다.
이렇듯 지역의 민관이 함께한 온정에 오 씨의 얼어붙은 마음은 서서히 녹았고 마침내 그 역시 ‘다시 한 번 떨쳐 일어나보자’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기 시작했다. 여태껏 마셨던 술도 완전히 끊어 반년여의 시간동안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았으며 담배를 태우지 않은지도 2개월째가 됐다.
현재 일하고 있는 재활용사업단에도 가장 먼저 출근해 직접 요리한 반찬 등을 직원들에게 대접하기도 하는 등 시종일관 성실한 모습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퇴근 후에는 공설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에 힘쓰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시작을 한 오 씨에게 최근 좋은 일이 생기고 있다. 지난달 헤어진 채 연락이 전혀 되지 않았던 그의 누나를 15년 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또, 지금은 세상을 떠난 친형의 형수와 조카와도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또 다시 조그만 가게를 차리는 꿈을 갖고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
오 씨는 “다시 힘을 내 새로운 삶을 살고자하니 좋은 일도 덩달아 따라오는 것 같다”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애써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