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신안 섬마을 여교사 윤간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심란하고 착잡하다. 이 사건은 행위의 대담성과 교활성 면에서 정상인의 치를 떨리게 하는 수준이다. 이 사건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하게 만들 뿐 아니라, 심지어 남성의 변별적인 열등성을 새삼스럽게 부각시키는 면도 있다.
언론이 극화시킨 면도 있겠지만, 관광객 감소를 걱정하는 섬 주민의 반응은 무지와 이기의 극한을 보여준다. 또한 “서울에서는 묻지마라 살인도 하는 판에 젊은 사람들이 술김에 그럴 수도 있지” 식의 반응은 보편적 윤리의식의 실종과 파탄을 여지없이 노출한다.
무서운 것은 이런 사건이 과거에도 얼마든지 있었고, 그 중 대부분의 것을 은폐, 또는 방치한 채로 그 섬마을의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지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다. 게다가 이런 나라에서 그 섬마을의 일은 비단 그 섬마을에 한한 것이 아닐 거라는 추론마저 얼마든지 가능하다.
들리는 바로 그 행위자들은 기껏해야 유기징역 몇 년에 처해질 것이라고 한다. 나는 엄벌주의에 반대하지만 이 경우만은 엄벌주의를 주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성범죄를 처벌하는 지금의 법률 자체가 불합리하게 미온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불합리성은 우리의 타고난 심성이나 전통과는 전혀 무관하다. 또한 성이 자유로워졌다고 해서 성범죄까지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성범죄에 관대한 것은 전쟁을 일삼은 제국주의의 폭력성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벌인 전쟁에서 성범죄는 흔해빠진 일상에 속했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은 조선시대의 것이 아니라 식민지시대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성범죄 처벌에는 ‘자비’가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300건에 이르는 성범죄 논의가 기록되어 있다. 성희롱에는 장형, 강간 미수범에게는 장형에 유배형이 추가되었고, 강간범에게는 어김없이 교형, 미성년자 강간에는 참형이 부과되었다.
15세 계집종이 칼로 주인의 이마를 찌른 사건이 있었다. 주인이 겁탈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숙번(李叔蕃)의 계집종 소비(小非)가 나이 15세인데, 본 주인이 간통하려는 것을 꺼리어서 칼날로 본 주인 이마빼기를 찔러 상하게 했으며...”
왕이 계집종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신하들에게 묻는다. 그러자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한다.
소비의 죄는 모두 아뢰기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다." (세종실록, 1433년)
조선시대에는 이만큼 여성의 정당방위를 무한정으로 인정해 주었다.
<중종실록> 1528년의 한 기사에는 ‘왕이 강간한 도백손을 추문하라고 전교하다’라는 제목이 보인다.
“근래 풍교(風敎)가 매우 아름답지 않아서 놀라운 일이 많이 있다. 상인(常人)이 강간(强姦)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겠는데, 더구나 사족(士族)이겠는가?”
이처럼 왕은 신분이 높은 사람의 성범죄를 더욱 엄정히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세종 때에는 부녀자를 성희롱한 성균관 유생에게 장형 80대를 부과한 일도 있었다.
피해여성의 성력이나 신분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기녀라도 동의가 없을 경우 강간으로 처리되었으며, 피해 여성이 처벌을 원하는지 여부는 정상참작 사항이 아니었다. 또한 완력을 쓰지 않았어도 여성의 동의가 없었으면 강간으로 간주되었다.
중종 26년(1531) 이팽령이 사노 봉원의 딸 순금과 관계했다. 주변 관련자가 모두 화간이라고 증언했지만 순금이, "나는 여인이라 거역할 힘이 없어서 이틀 밤을 함께 잤다."고 답하자 가해자는 즉시 강간으로 처벌 받았다.
조선시대의 성범죄 처벌이 엄격했던 데에는 여성의 정조를 중시한 가치관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성범죄가 가지는 가공할 폭력성과 야만성을 함께 문제시했다.
성범죄는 극형으로 처벌해야 한다. 이것은 일벌백계의 엄벌주의가 아니다. 성범죄가 가지는 특수한 악성에 비추어 볼 때 극형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형법을 조선시대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환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