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1) 평검사 김영종 :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에게 전화해서 특정 사안에 대해 잘 봐달라고 청탁 전화를 하지 않았나요?”
대통령 노무현 :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2) 사간원 정언 조순(趙舜) : “지금 신 등에게 ‘대신을 경멸한다.’ 하는데, 신 등이 어찌 대신을 경멸하리까. 사신(思愼, 영의정 노사신)이 위의 앞에서 대간의 논박을 당했으면 대죄(待罪)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온데, 도리어 대간더러 ‘고자질을 해서 곧다는 이름을 취득하는 짓이다.’고 하니, 이는 전하께서 대간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자기 말만을 믿게 하기 위해 감히 가슴 속의 음모를 드러낸 것입니다. 춘추(春秋)의 법을 말하면 사신의 죄는 비록 극형(極刑)에 처해도 도리어 부족하옵니다. 신 등은 그의 살덩이를 씹고 싶습니다. 이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인신(人臣)으로서 누가 군상(君上) 앞에 직언을 할 자가 있겠습니까?”
임금 연산군 : “네가 사신(思愼)의 살을 씹어 먹고 싶다고 말한 것은, 필시 ‘내가 대간(臺諫)이 되었으니 비록 이같이 말할지라도 나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에서일 것이다....그 살을 씹어먹고 싶다고까지 말했으니, 이로써 미루어 생각하면, 비록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면류관을 쓴 나라도 공경하는 마음이 있겠느냐. 조정은 화목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지금은 조금만 불협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 같은 말을 하니, 되겠느냐.”
- 연산군일기, 연산 3년 7월 21일 기사, 1497년
1)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대화에서 있었던 문답이다. 당시 검사들은 대통령의 검찰개혁에 집단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사실 여부를 떠나 검사가 대통령에게 “청탁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대통령이 이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의 답변 대신 “지금 막 가자는 거지요?”라고 응대한 것은 논리적 오류에 속한다.
김영종 검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표현대로 ‘막 가자’는 의도에서 그런 질문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막 가자는 것 아니냐?’고 다그친 셈이 되었다. 논리학에서는 이런 오류를 ‘의도확대의 오류’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이 글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막말’과 ‘권위주의’이다. 먼저, 여기서 막말을 한 것은 검사가 아니라 대통령이었다.
2)는 조선시대 연산군 때 사간원 정언 조순(30세)이 당시 영의정이었던 노사신을 탄핵하면서 왕과 나눈 대화이다. 당시 영의정 노사신은 청요직 연대에서 반대하는 수륙제 시행과 폐비 추승 문제 등에서 왕의 편을 들다가 대간들의 탄핵을 받게 된 것이다. 경위야 어떻든 사간원 정언이 왕의 면전에서 ‘영의정의 살덩이를 씹어먹고 싶다’고 한 것은 ‘막말’에 속한다.
역사를 읽다 보면 ‘아이러니’를 느낄 때가 많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대 대한민국의 대통령 중 가장 비권위적이었던 인격체의 대통령으로 인식된다. 이면의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튼 다른 대통령들과 비교해 볼 때 노무현에게는 비권위적인 면이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젊은 평검사 김영종(37세)의 도발적인 질문에 비논리적이고 권위적인 막말로 응대한 것이다.
이보다 506년 전 조선의 조정에서 사간원 정언 조순은 우리가 폭군으로 알고 있는 연산군 앞에서 대단히 권위적인 막말로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당시 조순은 정 6품, 30세의 나이였다. 그런데 이에 연산군 이륭이 보인 반응은 의외로 비권위적이다. 그는 ‘네가 대간이라서 왕인 나도 함부로 못할 걸로 알고 ‘살덩이를 씹어먹고 싶다’고 (극한 표현을) 했는데, 그것은 사실상 임금에 대한 공경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 후, “그래서야 되겠느냐?”고 타이르면서 말을 마쳤다.
현대인들은 과거인들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다. 자기들이 과거인들보다 교양이 더 있을 거라는 오해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1)과 2)의 대화에는 506년의 격차가 있다. 누가 보아도 506년 전의 2)가 현대의 1)보다 더 교양 있는 대화가 아닌가? 결국 현대인의 과거인에 대한 오해는 오해라는 말이 이미 품고 있듯이 터무니없는 것이다.
나는 현대인이 과거인에 비해 우월한 점은 근대적 지식, 즉 과학기술과 돈 계산밖에는 없다고 본다. 나머지는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현대인이 과거인보다 우월하다고 오해하는 것은 근대주의가 낳은 오류적 사고가 아닐까 한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대통령에게 도전한 대한민국의 평검사나 왕에게 도전한 조선의 사간원 정언 둘 다 이로 인해 훗날 불이익 같은 것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운은 남는다. 연사군이야 조선시대 519년 27명의 왕 중 가장 열등한 군주로 인식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노무현은 다르다. 그는 우수한 편에 속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그런데 평검사가 만약 노무현이 아닌 이승만이나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박근혜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니, 이런 질문은 아예 우문이다. 평검사는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그런 도전을 했을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