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우리가 알고 있듯이 숭유척불(崇儒斥佛,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함)은 조선왕조의 창업정신이었다. 이것의 원조는 ‘조선왕조의 설계자’라는 칭송을 듣는 삼봉 정도전이다. 삼봉은 스스로 <<불씨잡변>>을 저술하여 불교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총 19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불교의 핵심 이론들을 성리학적 논리로 비판하는 본격 종교 비판서이다.
이 책은 불교의 윤회설을 유학의 혼백이론으로 비판하면서 시작된다. 이어서 삼봉은, ‘불교는 삼강오륜의 인륜을 저버리고 있다고 하면서, 불교의 자비는 유학의 인(仁)과 비슷하지만 오륜을 무시한 채 자비를 강조하므로 사람을 이롭게 하고 만물을 구체화하는 기능이 없다고 말한다.
또한 삼봉은 불교의 승려가 걸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간민(姦民)’이라고 극단적인 어휘를 써서 공격했으며, 불교를 숭상했던 중국 위진남북조의 생명이 짧았음을 논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불교는 말이 높고 오묘하지만 사람들을 속이는 정도가 심하다고 하면서, 결국 ‘불씨의 말은 이(理)에 가깝지만 진리를 크게 어지럽힌다’고 결론지었다.
요즘 한국의 유명한 승려 중에 법륜이 있다. 어느 자리에선가 나는 그가 “조선은 고려만 못한 나라”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것을 보았다. 이후 나는 법륜의 책을 읽어 보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는 조선 역사와 근현대사에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역사 기행단을 이끌기도 하고 역사 강연을 하기도 한다. 그는 주로 고대사에 관심이 높아 보였다.
나는 법륜이 조선을 낮춰 보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조선 역사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승려로서 불교를 탄압한 조선에 대한 앙심(?) 때문인지, 둘 중 하나가 아니라면 둘 다 때문인지?
사실 조선의 불교 배척에는 무리가 있었다. 불가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선의 불교 배척만 비판해야지, 조선 왕조 전체를 폄하해 버린다면 그것도 일종의 진영논리(?)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오늘날 많은 스님들이 조선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것은 사실이다.
조선 왕조 초기의 사대부들은 신유학적 신념이 강고했다. 그들은 중국의 유학자들보다도 더 유학적이었다. 그들은 불교를 배척한 당의 한유나 남송의 주희를 우러러보았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강고하다 보니 반대로 불교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게 표출되고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형이상학적 세계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미신을 배격하면서도 언제나 하늘의 존재를 의식하며 언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오늘의 우리는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 사대부들의 내면심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실 숭유척불이 조선의 국시인 듯 말해지기도 하지만, 조선 기득권 세력의 대부분은 불교적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태조 이성계는 불교신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기 위해서는 고려의 불교 세력을 퇴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려의 불교 세력은 공권력의 통제를 벗어난 사병을 거느렸고, 왕권의 비호를 이용하여 조정의 경제력과 도덕성을 약화시켰다. 태조는 그들을 무력화하는 정책에 동의해 주었다.
조선의 불교 탄압은 처음에는 세금 부과, 토지 몰수, 승적 제한 등으로 출발했다가, 나중에는 삼하게 배타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어 왕릉에 사찰 건축 금지, 승려의 장례식 참가 금지,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 등의 조치로까지 약간 치사한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조선왕조의 지배자들은 불교의 대안으로 신유학을 선택했으며 이를 국가정책의 근간으로 선포했다. 그들은 서울에 유학대학을 설립하고 국가고시의 주요과목으로 유교경전을 채택했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가 유학 관료들의 건의를 다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불교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승려를 측근에 두었으며, 은퇴 후에는 사찰에 머물기도 했다.
세종은 불교의 깊이에 매료된 군왕이었다. 그는 유학자들의 반대를 테크니컬하게 피하면서 불교 서사시(월인천강지곡)를 지었고, 아들 수양대군에게는 석가모니 전기(석보상절)를 작성케 했다. 후임자 세조는 아예 불교에 심취, 의지한 군왕이었다. 초기 임금 중 유일하게 성종 하나만 정통 유학자였다.
조선 사대부들이 보기에 불교는 고려 말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악용하는 이념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유학적 왕족이나 대신 중에서는 자신들의 부도덕성을 불교를 이용하여 방패막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조선 사대부들이 불교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불교가 종교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조선 사대부들은 불교가 종교의 영역을 일탈하는 꼴을 참지 못했던 것이다. 대체로 유학자들은 불교가 원래는 ‘청정한 것’이라는 데에 동의했다.
다시 말해서 조선의 사대부들이 불교 자체에 반감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다. 만약 불교가 아닌 유교가 본분을 넘어 폐해를 나타냈다면 그들은 유교를 비판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비지성적인 종교 탄압자가 아니라 도덕적인 원칙주의자들이었다.
한 가지 유감인 것은 조선 사대부들의 유학이 대부분 정치적 투쟁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당대의 유학이 조선의 사회 질서를 효율적으로 고양시켰는지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사실 당대의 시점에서 조선의 신유학은 그리 연원이 깊은 것은 아니었다.
고려시대의 유학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1291년 소개된 신유학도 처음에는 식자층의 지적 흥미를 끌었던 수준이었다. 그랬던 것이 조선 개국과 함께 갑자기 지식층의 정신세계를 선도하게 되었다. 정통 유학자인 성종 시대에도 신유학은 확고한 지배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지배계층에서조차 신유학은 합의에 도달된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사대부들은 불교적 이념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정치적 책임에는 기여한 바가 그리 크지 않았다. 이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좌파가 우파를 공격하는 양상과 비슷한 면이 있다. 조선 초기의 신유학은 정치적 해결력을 갖추지 못했고, 이것은 예상에 없이 출현한 자질 부족의 군주 연산군을 만나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조선 초기의 사대부들은 역사적인 긴 안목에서 볼 때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당대의 정치적 승부에서는 패배했다. 나는 이것이 오늘의 좌파 또는 진보가 왜 정치적 승부에서 번번이 패배하는지와도 긴밀한 관련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패배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신유학에 도취된 나머지 도무지 전대인 고려의 전통을 계승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고려를 부정하기에 바빴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불교를 배척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좌파 또는 진보도 좀처럼 전대의 전통을 계승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계승해야 할 전통은 무엇인가? 바로 조선정신이다. 정작 그들은 계승해야 할 조선정신은 근거 없이 폄하, 외면하면서 서구에서 수입된 지식에만 경도되어 있다. 이렇게 하다가는 조선의 초기 사대부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의 좌파 또는 진보도 정치적인 승리를 기약하기가 어렵다. 오늘의 좌파 또는 진보는 조선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공부를 서둘러야 한다.